[단편소설] 유다를 찾아서-1

최후의 만찬의 비밀

by 파란 벽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멈춰 있었다. 손, 발이 움직이지 않는 대신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였다. 마주 본 거대한 벽면에 늘어선 13인의 거인들. 그들을 한 눈에 담기에는 그의 시야가 좁았다. 그들의 표정과 그들의 몸짓. 그것들은 그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한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 아니 볼 수도 없었으면서,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그들을 되살려 놓았다.

그림의 중앙에는 예수님이 있었다. 눈을 내리뜨고 빵과 접시가 널린 테이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간 내의(內衣)에 파란 외투를 걸쳤다.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안했다. 왼손을 들고 오른손을 누르며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기원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그의 좌우에 위치한 열두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수님의 왼편에 앉은 큰 야고보는 놀란 듯 두 팔을 펼치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 옆의 빌립보는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절규하고 있었다. 그랬다. 레오나르도가 그리는 이 장면은 예수님이 그의 12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는 그 날이었다. 레오나르도가 품고 있는 성경에는 귀퉁이가 접혀진 부분이 있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리며 수백 번 반복해 읽었던 부분이다. 그 강아지 귀처럼 잘록한 귀퉁이를 쥐어 펼치면 요한 복음 13장 21절부터 30절이 씌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등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쭤 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웃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이 장면을 그림으로 만들어 내었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저녁 만찬에서, 아끼시는 12명의 제자들에 둘러싸인 예수님이, 다른 이도 아니고 그들 중 한 명이 자신을 팔아 넘길 것이라는 예언을 막 마치고 난 후였다. 역시 다른 이도 아니고 예수님 당신의 입을 통해 들으며 모든 제자들이 경악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순간이었다. 야고보의 뒤에 앉아 얼굴만 삐죽 내세운 도마는 오른 검지를 세우며 재차 사실인지 따져 묻고 있었다. 그때부터 의심 많았던 도마는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바로 그 손가락으로 롱기누스의 창에 찔린 오른편 옆구리를 쑤셔 보기도 하였다.

도마 무리의 왼편으로는 세 명의 제자가 또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마태는 그의 왼편의 두 동료에게 얼굴을 돌리고 예수님을 향해 두 손을 뻗치고 있다. 자신이 방금 들은 예언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다태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왼쪽의 시몬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을 들어 식탁 위에 놓인 왼손을 내리치려 하고 있다. “도대체 그게 누구야?”라며 따지는 듯, 분노하는 듯 하였다. 가장자리의 시몬은 노회한 제자답게 침착하며 동요하지 않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 양손이 하늘을 바라보게 들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예수님 왼쪽의 여섯 제자들을 그려 넣었다. 저잣거리의 여느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표정과 몸짓이었지만 이전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던 어떤 위대한 화가들도 그리지 못하였던 장면이었다. 그만큼 사실적이었고, 철저히 독창적이었다. 사람들은 제자들의 그림을 보고 그들의 비명을,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회벽에 그려져 있으나 살아 있었고, 침묵하였으나 외치고 있었으며, 멈춰 있었으나 꿈틀거리고 있었다.

예수님의 오른편 멀리는 역시 세 제자들이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맨 오른쪽의 바르톨로메오는 놀라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 뒤의 작은 야고보는 오른손을 바로 옆 안드레아의 어깨에, 왼손을 한 사람 건너 베드로의 어깨에 올리고 해명을 듣기를 원하고 있었다. 바로 옆의 안드레아는 몸서리 쳐지는 예언을 부정하듯이 양손으로 허공을 가로젓고 있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수님과 그 오른쪽 한 무리의 제자들이었다. 예수님 바로 옆, 가장 사랑하는 제자이며 가장 어린 제자인 요한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채 예수님의 반대편으로 몸을 기울이며 쓰러지려 하고 있었고, 베드로는 요한의 가녀린 오른 어깨를 감싸 쥐며 예수님을 배신하는 자가 누구인지 다그치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면 당장에 베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허리 위에 접어 올린 오른 손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의 어깨 밑, 식탁 위의 가장 낮은 곳, 그리고 가장 그늘진 곳에 한 명의 제자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는 놀란 듯 몸을 뒤로 젖히며 기대 누운 듯 하였다. 은화 주머니를 쥔 오른손은 당황하여 식탁 위의 물잔을 엎어뜨리고 말았다. 그는 유다였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자신을 팔아 넘길 제자, 하지만 그의 얼굴이 있어야 할 부위는 아직도 하얀 벽면이 드러난 채였다. 그 커다란 식당의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림에서,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 그림에서, 믿을 수 없도록 휑하니 비어져 있는 한 줌의 공간, 회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 공백은 바로 유다의 얼굴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

레오나르도는 깊은 한 숨을 쉬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은화 서른 닢에 팔아 넘기는 제자, 역사상 가장 추악한 유대인이면서 또한 끝없이 고뇌하는 인간, 결국은 죄책감에 다음날 스스로 목을 매는 한 사내의 복잡한 심경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그 얼굴을 빈 채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다의 얼굴은 어쩌면 예수님의 얼굴과 대조를 이루어 이 그림의 성패를 좌우할 만한 마지막 부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레오나르도의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성스러운 얼굴을 상상하라면 할 수 있었지만 거꾸로 가장 추악한 얼굴을 그려보라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림을 거의 마쳐갈 지금까지도 응어리진 채 풀리지 않는 매듭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루 종일 그림만을 마주하고 있었던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굳어 있던 관절들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힘겨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밤은 깊을 데로 깊어 수탉이 새벽을 알리기 얼마 전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비틀거리며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을 나섰다. 멀리 보이는 스포르체스코 성을 왼 옆구리에 끼고 하늘이 붉어 오는 동쪽을 향해 걸었다. 천천히 한 시간쯤 걷자 하늘을 가릴 듯한 웅장한 건물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오모(밀라노 대성당)였다. 밀라노에서 제일 큰 성당 앞에는 당연히 넓다란 광장이 있었다. 이 두오모 앞 광장에는 동틀 때쯤 시장이 형성된다. 새벽 미사를 드리러 나온 많은 시민들이 물건 파는 장사치들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마차를 타고 온 귀족들도, 아침 빵을 사려는 평범한 시민들도, 또 그들에게서 동전 몇 닢을 얻어내려는 걸인들도 모두 한 자리에 모여든다. 짐꾼들은 연신 흐르는 땀에 아예 웃통을 벗어 젖히고 무거운 상품들을 지어 나른다. 장사치들은 부지런한 손짓, 발짓과 유쾌한 외침으로 손님을 부른다. 이들이 숨을 불어 넣은 새벽의 두오모 광장은 마치 살아 숨쉬는 거대한 생명체와 같았다. 사람들이 뭉쳐서 뼈대를 이루고, 사람들이 피가 되어 혈관을 흐르며, 사람들이 움직여 근육을 수축시킨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라도 하나 빠지면 그 커다란 생명체는 이내 반짝이는 눈빛을 잃고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는 이러한 북적임을 좋아했다. 그가 꿈꾸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잘 알아야 했다. 밀라노 시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새벽녘의 두오모였다. 시장통에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어떤 이의 표정, 어떤 이의 몸짓, 또 어떤 이의 울룩불룩한 근육들을 작은 스케치북에 옮겨 담았다. 그는 이곳에서 야고보의 얼굴을 발견하고, 바르톨로메오의 몸짓을 찾아내었으며, 시몬의 침착함과 도마의 손 동작도 얻었다. 레오나르도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감정도 놓치지 않았다. 재고품들을 묵직한 금화로 팔아 치운 장사치의 웃음, 형편없는 물건을 속아 산 아낙네의 욕설, 동전 몇 닢에 뼈가 으스러져라 무거운 짐을 버텨내는 짐꾼의 피곤함, 엄마를 따라 나온 잠이 덜 깬 아이의 나른함을 귀로 보고 눈으로 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빌립보의 절규, 요한의 슬픔과 베드로의 분노를 그려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의 누구도 유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