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의 비밀
4년 전인 1494년에 레오나르도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의 한쪽 벽을 채울 거대한 벽화를 의뢰받았다. 길이가 8.8미터, 높이가 4.6미터나 되는 공간이었다. 후원자인 루도비코 경과 의뢰인인 수도원장은 장소에 어울리는 그림을 원했다. 수도사들이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모이는 이 식당에 예수님이 그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보다 어울리는 그림은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림의 주제를 그렇게 정해버렸다. 밀라노의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아들 루도비코 경은 미천한 출신임을 감추려는 듯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그가 브라만테를 시켜 건설하고 있는 스포르체스코 궁도 그랬고, 도미니코 교단에 거금을 기부하여 세우고 있는 이 수도원도 그랬다. 규모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조촐하고 소박해야 할 수도사들의 식당도 화려한 벽화로 장식되기를 원하였다. 수도사들이 그 그림에 감동하여 스포르차 가문을 위해 기도해주기를 바랬다. 신중하게 여러 화가들을 물색하던 그는 당시 밀라노에 머물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낙점하였다. 의외의 결정이었다. 피렌체의 신동(神童)으로 불렸었지만 그 기대와는 달리 아직 변변한 대작을 완성한 적 없는 그였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인사를 등용하기로 유명한 루도비코 경의 눈은 날카로웠다. 레오나르도의 문제가 그림에 대한 재능이 아닌 편집증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그가 그리던 ‘암굴(岩窟)의 성모(聖母)’가 그랬다. 1482년 피렌체로부터 밀라노로 옮겨온 레오나르도는 그 이듬해에 밀라노 산 프란체스코 그란데 성당을 장식할 제단화를 의뢰받았는데 그것이 암굴의 성모였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림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미완성이라는 핑계였다. 우스꽝스럽게도 의뢰인들은 이미 그려진 그림에 만족하여 인도해 주기를 원했다. 그런데도 레오나르도는 아직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누가 봐도 완성된 그림에 끊임없이 덧칠을 하였다. 그런 편집증을 다루는 법을 루도비코 경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후원자의 강력한 압박으로 등을 떠미는 것이었다. 수도원의 벽화를 그리는 데에 하염없는 시간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레오나르도를 닦달하여 6개월만에 밑그림을 어느 정도 완성시켰다. 그러자 루도비코 경은 냉혹하게 레오나르도의 손에서 숯을 빼앗고 붓과 팔레트를 쥐어 주었다. 그리고 인부들을 시켜 회벽을 빠른 속도로 칠하게 하였다. 회벽이 마르기 전에 색을 입혀야 하는 프레스코화의 특성상 레오나르도는 회벽을 칠하는 속도에 맞추어 채색을 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방법으로 결코 이룰 수 없는 완벽한 그림을 그리려는 레오나르도의 고집을 꺾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루도비코 경의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등을 떠밀려 밑그림을 6개월 만에 마친 레오나르도는 이후 3년 반 동안을 그림의 채색과 일부 수정에 전념했다. 그렇게 해서 단 4년만에 그림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에게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속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얼굴은 아직 밑그림조차 그려지지 못한 상태였다.
최후의 만찬을 그려 나가던 레오나르도에게 이러한 지체는 한 차례 더 있었다. 그림을 막 시작하여 중앙에 앉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던 때였다. 예수님 뒤에 미리 그려진 창문은 햇빛을 가득 담아 마치 후광처럼 예수님의 얼굴을 밝히도록 표현하였다. 하지만 그 후광의 주인공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제자들의 배신을 예언하면서 느끼는 심란함, 그러면서도 그들을 용서하는 관대함, 죽음을 준비하는 대범함, 하느님 곁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 그리고 항상 그의 몸에 일체 되어 감도는 사랑과 평안함을 모두 담은 얼굴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레오나르도의 상상력만으로는 그려내기 힘들었다. 그 표정과 분위기를 보여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한낱 인간이 그러한 표정을 모두 보여주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전부가 아니라면 일부라도 그것을 알려줄 모델이 절실하였다. 레오나르도는 그 얼굴을 찾기 위해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찾아다녔다. 성스러운 신부나 수도사들의 얼굴에는 레오나르도가 바라는 예수님의 모습이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이들은 심란함과 가벼운 평안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의 숨결이 부족하였고, 반면에 예수님에게서는 보이지 않아야 할 시기심과 탐욕에 의해 만들어진 주름살도 보였다. 다음으로 레오나드로가 집착한 것은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천진난만하여 죄를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의 얼굴에 예수님의 모습이 깃들여져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랬다. 많은 아이들에게서 사랑과 평안함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담대함이나 연륜, 고민의 흔적이 없었다. 예수님보다는 천사의 얼굴을 그릴 때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다른 화가들의 표현을 빌려오려고도 하였다. 이전에 그려졌던 예수님의 성화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위대한 화가들은 이미 레오나르도 이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그려낸 예수님의 표정은 훌륭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예수님은 살아 숨쉬고 있지 않았다. 마치 죽은 박제를 그려놓은 것처럼 생동감이 없었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