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유다를 찾아서-최종회

최후의 만찬의 비밀

by 파란 벽돌

크리스티아노는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재판관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려 했다. 안젤리나를 향한 그의 순수한 사랑도, 로베르토의 여성 편력도 그의 살인 행위에 대한 변명으로 통하지 않았다. 재판관의 관용을 이끌어낸 것은 그의 부모가 빵 가게를 급하게 처분한 돈으로 마련한 뇌물이었다. 대신 이제 막 청춘을 시작한 이 청년은 햇빛도 들지 않는 도시의 지하 감옥에서 남은 여생을 지내야만 했다. 크리스티아노를 좌절하게 한 것은 한평생 지내야 할 감옥의 어두움과 속박이 아니었다. 신앙심이 깊은 이 청년은 자신이 한낱 질투에 눈이 멀어 하느님이 가장 금하시는 십계명의 하나를 어겼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 했다. 또한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십계명의 또다른 하나를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하느님의 심판이 아닌 자신의 나이프에 죽어간 안젤리나와 로베르토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는 끝없이 절망했고, 바닥을 모른 채 주저앉았다. 하느님을 배신한 두려움과 죄책감을 얼마라도 덜어내지 않는 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크리스티아노는 자신도 자신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처럼 고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저지른 죄와 배신에 대한 형벌로 하느님께서도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명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돌벽에 이마를 찧었고 일부러 자신의 뼈를 부러뜨렸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낄 때에 오히려 마음의 괴로움은 덜해졌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질 때 영혼의 핏자국은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는 기도하며 자해(自害)하고, 자해하며 기도했다. 매끈했던 그의 피부는 점점 어둡게 주름져 갔다. 숱이 많던 머리는 빠지고 새어버려 회색이 되었다. 부러진 콧등은 휘었고 이도 듬성듬성 빠져갔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그의 얼굴을 덮었던 온화함과 평안함이 사라지고, 대신 고통, 후회, 참회의 그림자가 뒤덮였다는 것이다. 암울한 표정들은 사람의 얼굴을 빠르게 파괴한다. 그의 얼굴은 자신조차 몰라보게 흉측하게 변해버렸다.


여기까지 얘기한 후 크리스티아노는 가래가 들끓는 기침을 하였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멈출 줄 몰랐다. 붉어진 얼굴과 늘어난 목의 혈관들을 진정시키려 그는 다시 잔을 들어 겨우겨우 물을 몇 모금 마셨다.

“죄송합니다. 나리. 저는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으로부터 스스로를 해치라는 계시를 받았고, 죄책감으로 제 자신을 망가뜨렸습니다. 그래서 나리가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 된 것입니다.”

“그랬던가? 그래서 그 이후에 자네를 만날 수 없었군.”

“예, 저는 두 사람의 살인자로 스스로를 지옥에 가두었습니다. 어차피 사형을 당하여 죽었어도 지옥에 갇혔겠지만 살아있다는 핑계로 죄에 대한 벌을 미룰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인지도 모르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낮에 나리가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줄도 모르고 감옥 밖으로 옮겨졌지만 저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습을 마주 대할 용기도 나지 않았고 감옥 밖 시민들을 다시 볼 면목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한 밤의 꿈이라 생각하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왠지 익숙한 나리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오, 주여, 그러자, 눈앞에, 제 눈앞에, 글쎄, … “

크리스티아노는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에 입술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를 토한 것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말을 이어갔다.

“ … 예수님이, 살아있는 예수님이 온화한 미소로 팔을 벌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체온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살과 역동하는 피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오, 주여. 예수님은 ‘너의 죄를 사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두 사람을 죽인 흉악한 살인자를 그분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어찌 저 같은 자를 위해 그분이 십자가를 지시려 하시는 것일까요? 왜일까요? 나리?”

크리스티아노는 말을 멈추고 한참을 울었다.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로 어깨를 들썩였다. 레오나르도도, 안토니오도 그의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이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울다 지친 크리스티아노의 어깨를 따뜻이 감싸 주는 것이었다.


이제 밤은 깊어 자정이 가까웠다. 크리스티아노는 천천히 일어났고 안토니오는 그를 마차에 태웠다. 마차가 떠나기 전, 크리스티아노는 마차 뒤로 난 철창을 잡고 레오나르도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레오나르도 나리, 나리가 그리신 최후의 만찬은 온 이탈리아 반도의 시민들이 추앙하는 명작으로 남을 것입니다. 누구도 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미천한 저의 얼굴이 그 위대한 벽화를 완성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이제 저는 감옥으로 돌아가 얼마 남지 않은 숨을 마칠 생각입니다. 그동안 주님께 사죄하고 또 감사하며, 저의 손에 죽어간 두 사람을 위해, 그리고 저 때문에 아직도 고통받고 있을 저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마치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처럼 찾아와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나리의 은혜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항상 나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마차는 감옥을 향해 출발하였다.

레오나르도는 다시 수도원 식당으로 돌아왔다. 벽화를 바라보았다. 촛불의 출렁이는 빛을 받은 벽화가 함께 울렁거리고 있었다. 크리스티아노가 보았던 인자한 예수님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에 그를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고 있는 유다의 옆모습이 있었다. 그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그린 물감은 아직 마르지 않아 번들거렸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어두운 얼굴, 깊은 주름, 막 자란 수염 속에 숨겨진 다양한 감정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께 외치고 있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레오나르도는 벽화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성호를 그었다. 자신이 그렸지만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의 손을 떠난 그림이었다. 그가 수년 동안 영혼을 바쳐 그린 그 그림은, 그가 꿈꾸던 바대로 살아있고,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예수님과 성인들의 호흡을 만들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한번 시작한 기도는 밤이 깊도록 그칠 줄 몰랐다. 어느새 문 밖에서는 새벽닭이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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