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의 비밀
크리스티아노는 레오나르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안젤리나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못하였다. 거두기는커녕, 애끊는 사랑은 더욱 깊어갔다. 안젤리나가 크리스티아노를 차갑게 대할수록 연정은 더욱 끓어올랐고, 그녀가 그를 멀리하는 만큼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어느 수요일 아침이었다. 크리스티아노는 여느 날처럼 커팅 나이프로 딱딱한 빵을 썰고 있었다.
“크리스티아노, 좋은 아침이에요.”
안젤리나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오, 안젤리나, 매주 목요일 아침에 들르시더니 오늘은 웬일이신가요?”
크리스티아노의 목소리는 벌써부터 떨렸다. 지난 목요일 안젤리나를 만난 후 일주일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안젤리나가 하루 일찍 가게에 찾아온 것이었다.
“주인 어르신이 오늘 저녁 손님들을 불러 파티를 한다고 해서요. 오늘은 부드러운 밀빵과 디저트로 먹을 달콤한 호박 케잌이 많이 필요해요. 준비해 줄 수 있나요? 오후 5시까지 펠리코가(街)의 비토리오 저택으로 배달해 주시면 돼요.”
“물론이죠, 안젤리나, 그때 가면 당신을 만날 수 있나요? 나를 위해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요? 아직 부족한 나의 고백으로 당신의 마음을 내게 돌려놓고 싶어요.”
“오, 제발, 크리스티아노, 그런 말은 이제 그만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 나에게는 만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게 누군가요? 나에게 말해줄 수 있나요? 그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나의 사랑을 허락받고 싶어요. 나에게는 이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밖에 없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한번만 더 그런 말을 한다면 앞으로는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을 거에요. 제발 그런 말은 그만하고 늦지않게 빵을 배달해 주세요.”
그녀는 차갑게 대답하고 서둘러 떠났다. 크리스티아노는 낙담했다. 이제 그의 마음속은 안젤리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를 잊기 위해 다른 여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 여인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송곳 하나 꽂을 만한 구석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늘은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려 놓겠어. 반드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크리스티아노는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차에 빵을 실어 비토리오 저택을 찾아갔다. 저택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비토리오가(家)는 밀라노의 신흥 귀족이었다. 가문을 연 로베르토 비토리오는 무역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는 매년 거액의 후원금을 스포르차 가문에 바쳤고, 당연히 스포르차 가문은 로베르토와 그의 사업을 비호하였다. 로베르토는 정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의 정력은 사업과 교제를 위해 쓰이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남은 에너지를 그는 여인을 유혹하는데 썼다. 이미 60의 나이를 넘겼지만, 그는 여전히 밀라노 시민들 사이에 회자(膾炙)되는 음탕한 연애 사건들의 주인공이었다.
성당에서 5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 종소리가 끝나기 전 크리스티아노는 저택의 현관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안젤리나와 젊은 하인이 그를 맞았다. 빵을 부엌으로 옮기자 마자 안젤리나는 사라졌고 젊은 하인은 안젤리나를 찾고 있는 크리스티아노를 쫓아내듯이 문밖으로 내몰았다. 크리스티아노는 다시 가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를 다시 만나야 했다. 그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어야 했다. 마차를 거리에 세워두고 저택 정원의 큰 나무 뒤에 숨어있었다. 안젤리나는 파티 준비를 하면서 부엌과 가까운 저택 후문을 드나들 것이다. 그때 그녀가 나오면 그녀를 불러 세워 잠시라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들이 타고 온 마차들이 속속 도착하고 화려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내려 빨려들어가다시피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저택 뒤쪽의 불 밝혀진 큰 방은 식당인 듯 하였다. 사람들이 오가다 머무는 것이 보였고, 풍성한 식사와 술을 즐기는지 시끌벅적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소음이 뜸해질 무렵 이윽고 저택의 후문이 열렸다. 안젤리나가 주위를 살피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크리스티아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 안젤리나를 따라 나오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술이 많이 취했는지 비틀거리는 걸음이었다. 그 남자는 먼저 나온 안젤리나를 쫓아 뒷마당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크리스티아노는 몸을 낮추고 소리가 나지 않게 그들을 뒤따랐다. 덤불에 가까워지자 소곤거리는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주인님, 많이 취하셨어요.”
또다른 그림자의 주인공은 이 저택의 주인 로베르토 비토리오였다. 로베르토가 과장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 안젤리나, 내가 마신 술이 어찌하여 너의 아름다움을 치장해 주는 것이냐?”
“호호호, 주인님은 정말 말씀도 잘하세요.”
“안젤리나, 어서 내게로 오렴. 탐스러운 너를 안아보자꾸나.”
“주인님은 항상 그런 식이에요. 급하게 욕정을 채우려고만 하죠. 지난 밤 저에게 약속하신 것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 약속을 들어주시기 전까지는 주인님의 품에 안기고 싶지 않아요.”
“그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교외의 너의 집에 나의 선물을 실은 마차가 곧 도착할 것이다. 이제 그만 도망가고 나에게 오려무나.”
“정말인가요? 주인님?”
로베르토의 한 마디에 안젤리나는 너무나 쉽게도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익숙해 보였다. 로베르토의 손은 거칠게 안젤리나의 치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이윽고 속옷을 내리고 그들은 마치 길거리의 개들처럼 하나로 붙어버렸다.
크리스티아노는 몸을 떨었다. 그가 온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한 소녀가 이제는 희어버린 머리마저 얼마 남지 않은 늙은 염소에게 몸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녀를 범하고 있는 것이 왜 하필이면 노회한 바람둥이 로베르토여야 하며, 왜 그녀는 사랑도 아닌 몇 푼어치 물질을 조건으로 헤프디 헤픈 그의 욕정을 받아들여야만 했는가? 겨우 그것 때문에 첫사랑에 눈이 먼 순진한 소년의 열정을 그리도 쉽게 거절했어야만 했는가? 그는 절망했다. 그런 그의 몇 발짝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음탕한 두 남녀는 신음소리마저 흘리고 있었다. 순간 크리스티아노의 절망은 질투와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허리춤을 더듬었다. 빵을 썰 때 사용하는 커팅 나이프의 날렵한 칼집이 만져졌다. 그는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로 뛰어들었다. 정신없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칼끝에 닿는 것이 있으면 찌르고, 걸리는 것이 있으면 베었다. 은은한 달빛 속으로 날카로운 비명이 흘러내렸다. 크리스티아노의 몸짓은 멈추지 않았지만 비명소리는 금새 잦아들었다. 크리스티아노가 정신을 차려보았을 때. 비명소리를 듣고 뒷마당으로 뛰어나온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중의 누군가가 그를 결박하여 꿇어 앉혔다. 크리스티아노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아직도 따뜻한 피를 흘리고 있는 안젤리나와 로베르토의 시체가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