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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07.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40

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재미있게 보려면-8

https://www.youtube.com/watch?v=zhmYnuoEBEM


7.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집도의

수술실 안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드라마에 보이는 것과 같이 신성한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진중할까요? 아니면 그때그때 벌어지는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수선하고 긴박할까요? 완벽히 계획된 수술이 매끄럽게 진행되면서 부드럽고 유쾌할까요? 드라마에서는 배경 음악이 깔리기도 하면서 매우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어디까지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실제에서 대부분의 수술실은 이미 수술자들이 그동안 여러 번 함께 시행해 온 익숙한 수술들을 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하게 루틴에 따라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수술실의 분위기는 방마다 사뭇 다른데요, 그것은 수술의 지휘자인 집도의의 성향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성격이 다양하듯 수술실 안에서 집도의의 자세도 천태만상을 보이는데요, 나머지 수술 참여 인력은 수술과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집도의를 존중하기 때문에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의 기분에 맞춰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집도의는 수술실 안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폭군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은 있습니다. 그가 환자를 위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대표적인 집도의의 유형을 한 번 알아볼까요?


1) 달관형

나이 50대 중반을 넘어선 외과 의사들에게 가장 흔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공의, 전임의로서, 그리고 집도의로서 30년 가까이 수술을 해오다 보니 그동안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까지 안 해본 수술이 없고, 안 겪은 경험이 없습니다, 웬만한 돌발 상황이 닥쳐도 별로 동요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이미 그런 일은 예전에 많이 당해 본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머릿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갑자기 벌어져도 아마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어허...."

그리고 해야 할 대처를 침착하게 해 나가겠지요. 그래서 수술실 안은 환자의 심전도 박동 소리만이 울릴 정도로 차분하고 집도의가 필요한 수술 기구를 요청하는 소리가 나지막이 간간히 들릴 것입니다. 수술 보조자들은 마치 희로애락의 감정을 달관한 부처님 옆에서 수술을 도와드리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제2, 3 보조자들은 이런 수술실이 가장 두렵습니다. 엄청 졸리거든요. 집도의의 수술 장면은 마치 최면을 거는 최면술사의 반복적인 손짓처럼 느껴지고, 심전도 박동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립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졸기라도 하면 부처님 입에서 쌍욕이 나올 수도 있거든요.


2) 욕쟁이 할머니형

요즘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심심치 않게 있던 유형입니다. 수술 내내 소리 지르고 욕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과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다 치고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끼는 서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얼마 전 미국 친구에게 듣고 상당히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도 초보 의사 때에 이런 분들의 수술을 도와드리러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수술이 끝나면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정신이 혼미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습니다. 일부러 욕쟁이 할머니 집을 찾아다니며 욕도 먹고 밥도 먹는 것을 즐기는 분이라면 별로 상관이 없겠지만 불행히도 저는 그런 강심장이 아니고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서 힘든 점이 참 많았습니다. 그럼 그들이 어느 정도의 욕을 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제가 들었던 차진 욕을 몇 개 들려드리겠습니다. 제가 독자님들에게 욕을 할 수는 없으니 가능한 한 예쁜 단어로 바꾸어 표현하겠습니다. 눈치껏 알아들으시면 되겠습니다. 욕의 국적은 다양해서 동서양을 아우릅니다. 

"이 바보 색희(色喜; 아름다운 기쁨)야!!!"

"Sun of beach (해변의 태양 같은 놈)!!!"

"God, them (신이여, 저들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Sheet (여기 종이 한 장만 줘??)!!!"

뭐, 이 정도의 아름다운 찬사들을 들었습니다. 보통 이런 분들은 수술 시간 내내 소리를 지릅니다. 수술이 끝나면 목이 쉬어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분도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뱃심이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3) 두 얼굴의 사나이형

이런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진료실이나 병실에서는 천사 같던 분이 수술실에만 들어가면 폭군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진료실에서의 말투: 벽돌 선생, 요즘 뭐 힘든 것 없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도와줄게.

수술실에서의 말투: 야, 이 자식아. 똑바로 안 해? 너는 어떻게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자신이 직접 집도를 하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의사들 중에 많습니다. 아마 수술에 임하면서 긴장을 많이 하게 되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자신감 결핍에서 생기는 예민함이라고 이해됩니다. 원래는 착한 사람인데 수술장에서는 극도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니까 남들을 돌보아 줄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힘든 것이지요. 뭐, 일부러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같이 수술에 참여하는 보조자들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다잡으려는 목적일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그런 분들의 수술을 보조하게 되면 잠이 싹 달아납니다.


4) 반장형

저는 이런 유형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마치 동네 반장 아줌마처럼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을 따뜻하게 챙기고 돌봐줍니다. 그들의 손을 이끌어 같은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지요. 우선 손을 세척하고 수술복을 입을 때부터 스크럽 간호사에게 따뜻한 인사도 하고 가벼운 농담도 해서 팀원들의 긴장을 살짝 풀어주기도 하고요. 눈은 수술 부위에 집중하지만 그 와중에도 각 수술 보조자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견인기를 당기느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짝 손을 잡아 도와주기도 하고 조는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자극을 주어 슬며시 잠을 깨워주기도 합니다. 수술 보조자가 실수하는 법이 있어도 적절한 선에서 경고를 주고 소리 높여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큰 형님처럼 따뜻하고 신뢰가 가는 유형이지요. 이런 분들은 꼭 언성을 높이지 않더라도 카리스마가 있고 또 충성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수술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고요.


5) '내 귀에 피' 형

몇 년 전 유행한 '내 귀에 캔디'라는 노래가 있었는데요, 이와는 반대로 수술 보조자의 귀에서 피가 나게 하는 집도의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욕쟁이 할머니형처럼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조곤조곤한 한 마디로 마음에 상처를 주는 타입이지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벽돌 선생은 참 좋겠어. 부럽기도 하고."

"네? 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벽돌 선생은 생각이란 걸 아예 안 하고 사는 사람 같아서...... 얼마나 세상 살기 편하겠어."

"헉......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뭐, 그런 건 아니구. 실수라기보다 아까부터 꾸준히 수술을 방해하고 있어서....... 그럴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줬으면 고맙겠어."

"헉....... 잠깐만, 교수님, 제 귀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네, 그것은 고막에서 흘러나오는 피였습니다.


어떠세요? 꼭 여러분들의 직장 상사분들과 비슷하지요? 뭐, 집도의들의 위치는 아마도 과장님, 부장님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꼭 그 정도의 인원을 지휘해서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니까요. 연배도 얼추 비슷할 것 같고요. 세상에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듯이 집도의도 그 성격에 따라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그 수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집도의에게 맞춰 줄 수밖에 없고요. 아무리 까다로운 집도의라도 그가 결국 환자의 생명과 수술의 결과를 모두 책임지는 사람이라 신뢰와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거든요. 물론 그중에는 부적절하고 심한 행태를 보이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분들은 자연적으로 도태되고 심하면 퇴출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전에 스스로 습관을 고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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