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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Nov 17. 2021

잠깐 소 좀 키우고 오겠습니다.

저는 요즘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리고 있는데요. 병원에서 일하는 본업이 있는 제가 이렇듯 놀라운(?) 글쓰기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약 1년 전부터 써놓은 몇 편의 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요). 앞서 올렸던 글인 ‘나는 왜 글을 쓰려했는가’와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가’에서 일부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글을 쓰기 시작한 지가 겨우 1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초보 작가입니다(사실은 작가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네요). 그나마도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읽는 플랫폼에 글을 올릴 생각으로 쓴 것도 아니었습니다. 역시 저의 이전 글인 ‘나는 글에서 무엇을 얻는가’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혼자만의 글을 써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인지 어느새 건방져진 저는 ‘이렇게 재미있는 글들을(작가님들도 아시겠지만 원래 자기가 쓴 글은 다 재미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평가해줄까?’라는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 아내에게 읽어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재미도 없는 글들을 자꾸 읽고 평가해주어야 하는 고역에 시달리던 제 아내는 좋은 꾀를 하나 내었는데, 그게 바로 제 글들을 브런치에 올려보라고 조언해준 것이었습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제 아내의 속마음에는 ‘브런치의 여러 독자분들에게 혹독한 평가를 받고 스스로 깨달아서 앞으로 그런 재미없는 글들은 혼자만 읽고 혼자만 즐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9월 말경부터 제가 써놓았던 글들을 조금씩 나눠서 브런치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예상과는 달리(?) 과분하게도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제 글이 좋아서 그러신 건지 아니면 불쌍한 아재의 외로운 노력이 가상하고 짠해서 그러신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한껏 고무된 저는 그만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속도 조절을 못한 채 매일같이 글을 올려 여러분들을 귀찮게 해 드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제 아내는 며칠 전 제 글이 새로 올라왔다는 휴대폰의 알림 벨소리를 듣고 결국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늘도 또 올렸어? 징하다, 징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대학병원 교수가 그렇게 매일같이 글만 써대면 사람들이 ‘소는 누가 키우냐?’고 오해하고 걱정하지 않겠어?”


그 말을 듣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가 키워야 할 소가 여러 마리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아, 그렇다고 제가 소여물도 먹이지 않고 딴청만 피우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도 잘 키우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제가 키우는 소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알려드릴 기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제법 큰 소를 몰고 꼴을 먹이러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주말에 제가 몸담고 있는 학회의 추계 학술대회가 열리게 되거든요. 제가 거기서 좌장도 보고, 논문도 발표하고, 학회 업무도 해야 해서 당분간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 일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며칠은 글을 못 올릴 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징하게 올라오던 글이 왠지 소식이 없다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잠시 소 좀 키우고 오겠습니다."  


“당신 글을 누가 기다린다고 말도 안 되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그런 허무맹랑한 걱정을 하고 있나?”

라고 꾸짖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만 그래도 저를 아껴주고 치켜세워 줄 사람은 역시 저 밖에 없기 때문에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럼, 돌아와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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