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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02.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 -1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그동안 재미없는 이상한 글만 써대던 사람이 또 무슨 해괴한 짓을 하는 거야?"

"글들이 하도 인기가 없으니까 괜히 관심 끌려고 요상한 제목을 갖다 붙인 것 아냐?"

"글쓰기가 무료해져 결국 축산업으로 직업을 전환한 것인가?"


제 글을 관심 있게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이 많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이번 글의 제목을 보신 분이라면 이런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 안에 담긴 '소'라는 단어가 생소한 분들은 제가 이전에 썼던 아래 글을 읽고 오시면 이해가 잘 되실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osdlee/69


이 글에서 제가 나중에 시간이 되면 제가 키우고 있는 '소'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고 했는데요, 이제 그럴 시간이 된 듯합니다. 작가의 소개란에 쓴 대로 저는 지금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 번도 제 글에서 의과대학이나 의료계에 대해서 다룬 적이 없었습니다. (아, 제 소설 속 인물 중에 의사나 의료계 쪽 직업을 가진 사람은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근 35년 간을 의료계 일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 그쪽 일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진력이 나서 제가 취미생활로 하고 있는 글쓰기에까지 그쪽 일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꼭 그렇지 않은 의사분들도 많지만 원래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 저는 제 일을 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봅니다. 차곡차곡 쌓이던 스트레스는 언제나 강건할 줄로만 알았던 제 정신에도 탈을 일으키고 말았는데요. 몇 년 전 어느 날 급격한 무기력증이 찾아오더란 말입니다. 다행히 환자분들을 진료하고 수술하는 일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매일 밤 출근하는 아침을 기다리며 잠을 이룰 정도로 제 일을 즐기던 저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저는 항상 '자기가 즐길 줄 아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꼽았습니다. 그것이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취미생활이나 그 밖의 기회로 간간히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령 예를 들면 저같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자기가 쓴 글을 이렇게 여러분들이 읽어보실 수 있는 플랫폼에 올려서 보여드리고 평가받는 기회를 가진다면 행복할 것이고, 만약 무엇인가 만들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아니면 혼자만의 공간에서 제대로 된 것이든 아니든 그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가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물며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런데 말이죠, 정말 다행스럽게도 제가 그런 행운아였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꼭 이 일을 하고 싶을 정도로 제가 가진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치료해 드리는 환자분들이 건강을 되찾고 잃었던 미소를 되찾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저는 저의 어린 시절을 하얗게 불태웠다고 자부합니다. 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관련 서적들을 쌓아놓고 밤새워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국내외 학회에 가더라도 일부 놀러 다니는 다른 선생님들을 등지고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배우고 돌아가려고 졸린 눈을 부벼가며 아픈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또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선생님들을 찾아가 그들의 수술을 참관하고 작은 노하우라도 배우고 익히기 위해 절실히 매달렸던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런 모든 과정 중에도 저는 육체적인 피곤함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니 그런 것들이 있었더라도 학문적, 기술적 성취에 따른 희열에 덮여버려 느껴지지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갱년기가 찾아오면서 호르몬이 떨어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앞만 보고 달려온 쉴 틈 없는 과로로 지쳐서 그랬는지 몰라도 제가 하고 있는 일들에 싫증이 나면서 도대체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회의가 들더란 말입니다. 그것은 저에게 그야말로 생소한 일이었고 한 번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계속)


*제가 또 '소들'을 소환한 이유는 이번 달에 '소 키우러 갈 일'이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3월이 되어 새 봄이 시작되면 국내외에 다양한 학술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열리게 되는데요. 제가 거기서 강의도 하고 발표도 해야해서 많이 바빠질 것 같습니다. 그 핑계를 대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벌여놓은 '유다 되살리기', '마키아벨리 이야기' 등이 있어서 "저 사람 또 싫증이 나서 다른 일 벌이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네요.

앞으로는 글이 뜸하게 올라오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제 글을 관심있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는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라는 인사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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