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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Jul 05. 2022

파란 벽돌-5

나의 특별함에 감사함

빈 도화지에 그림 그리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얀 종이처럼 마음을 비우는 것은 어찌어찌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위에 무엇을 그려나갈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막연하기 때문이다.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는 형상을 찾아나갈 때에는 그 의지에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것이 파란 벽돌집이다. 나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공간에 파란 벽돌이 층층이 쌓여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있는 나의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떠올린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붉은색 벽돌 혹은 회색 시멘트 벽으로 세워진 집들 속에 오롯이 자리 잡고 있는 그 독특한 건물을 말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색다른 사고가 물꼬를 트기 시작한다. 나는 날개를 달아 땅 위를 차오르는 듯한 상상력을 꿈을 꾸듯 마구 그려낸다. 그 속도가 빠르고 내용의 일관성이 없더라도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 나의 상상이 마음껏 꿈틀거리게 방치한다. 놀다 놀다 지쳐서 쓰러지거나 떠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렇게 채워진 도화지를 바라보면 꽤 쓸만한 독창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것이 나의 창의력을 일깨우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을 깨우치게 된 것을 감사한다. 누군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기존의 지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난제들을 만날 때마다 꽤 쓸모 있게 활용한다. 때때로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정도이다. 그렇게 약 십 년의 시간을 보냈다.


몇 달 전,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내가 브런치의 필명을 그동안 사용하던 나의 본명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려 고민하던 때였다. 나는 다시 어릴 적 내가 살던 그 파란 벽돌의 노란 나무 대문 집을 떠올렸다. 갱년기의 나이에 들어서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 그랬는지, 새로운 필명을 짓는 데에 또다시 모자란 창의력이 안타까워서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브런치 필명란에 그동안 써왔던 나의 본명을 지웠다. 그리고 그 하얀 여백에 파란 벽돌집을 그렸다. 잠시의 고민 후 나는 그 파란 벽돌을 나의 필명으로 쓰기로 결정하였다.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힘들 때마다 도움이 되어 주었던 그 파란 벽돌이 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붉은 벽돌에 익숙해져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노란색 고래만큼이나 독특하게 다가갈 수 있는 파란 벽돌은 창작을 반복하는 글 쓰는 사람의 창의성을 표현하는데 더없이 좋은 상징이었다. 벽돌은 홀몸으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벽이 되고, 굴뚝이 되고, 담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과 똑같은 벽돌들과 함께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야 한다. 줄을 맞춰, 층을 이뤄 벽돌을 쌓는 행위는 성실함을 표현한다. 글 쓰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미덕인 꾸준함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새로 지은 '파란 벽돌'이라는 필명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 만족감 속에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태하게 살아가던 나에게 신선한 것에 대한 갈망과 그것을 성취하려 노력하는 습관을 가르쳐 준 이가 누구였던가? 평온한 삶에 안주하여 뒤처짐을 당연히 받아들였을지도 모르는 나에게 도전하고 극복함을 알 수 있게 해 준 이가 누구였던가? 그것은 누구도 선뜻 옮겨가길 원치 않던 구석진 동네(당시로서는)의 언덕 위에 집을 지을 생각을 한 이였다. 남들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반짝이는 파란 벽돌집을 올린 이였다. 그 집이 팔을 둘러 품었던 작은 정원에 구성없이 나무와 꽃을 가꾸며 아이들에게 희망과 안식에 대한 익숙함을 배우게 했던 이였다. 그리고 집과 정원이 마련한 아늑한 공간을 드나드는 입구로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노란 나무 대문을 매달았던 이였다. 그렇다.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잠자고 있던 나의 소소한 창의성을 깨우고 그것에 매진하게 하였던 이는 바로 나에게 자신의 정신과 몸을 나누어 주었던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고 그의 성실한 습관을 익혔으며 무엇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던 것을 추구하고자 했던 용기를 배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깊이 감사한다. 그 모든 것을 갖게 해 준 나의 아버지에게.


파란 벽돌은 결국 나이자 나의 아버지이다. 그와 나의 동질감은 우리가 함께 몸담아 부대끼던 그 파란 벽돌집의 한 구석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반들반들한 파란 벽돌을 굽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것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꾸준함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예쁘게 완성된 파란 벽돌집에 화룡점정으로 노란 나무 대문을 달 줄 아는 심미안을 남겨주었다. 그는 이미 약해져 당신의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 정도로 노쇠하였으나 그가 남긴 또 다른 파란 벽돌집인 나는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뒤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것이 파란 벽돌에 담긴 아버지와 나의 사연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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