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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Jul 04. 2022

파란 벽돌-4

나의 특별함에 감사함

나는 창의성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창의력을 키우는 여러 권의 책을 사서 읽고 인터넷에 널린 강의를 찾아들었다. 물론 엄청난 창의성이 노력만으로 생겨나기는 힘들다. 하지만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을 법한 잠자고 있던 미세한 능력을 깨울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책이나 강의에서 읽고 들었던 방법들을 반복하면서 내 안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재능을 찾아내려고 힘썼다. 그것은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메마른 황야에서 우물을 파고 있는 사람의 심정이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파고 있는 구덩이 아래에 수맥이 위치하는 지도 확신할 수 없었고 정말 물을 퍼낼 수 있더라도 그 양이 나의 갈증을 채울 만큼 충분할 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구심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우둔하였고 무엇보다 성실하였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어린아이들은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 일쑤이다. 어른들은 그 답을 듣고 웃는다. 자신들이 바라고 있던 정답과는 동떨어진 어리둥절한 답변을 들으면서 그들의 기발한 사고에 신기해하거나, 아직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지 못한 그들을 조롱할 수도 있다. 아래에 나오는 시험문제에서처럼 아이들은 예문의 하나를 고르라는 친절한 배려조차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그들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어이없는 행동과 말들에 실소를 머금다 보면 가끔씩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한기를 느낀다. 불현듯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사고가 정답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진정 진실을 알고 있는가? 어쩌면 사방을 옥죄고 있는 사고의 틀에 막혀 강요된 답변만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십 년 동안 교육이라는 허울 좋은 굴레에 길들여져 제시된 방향만을 바라보고 정해진 방법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아닌가?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잘 조련된 해결책만을 현명하다고 여긴다면 더 나은 세상은 과연 누구에 의해 만들어질 것인가? 


모두가 '그렇다'라고 대답할 때에 과감히 '아니다'라고 외칠 줄 알고, 모두가 현실에 만족할 때에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안주하려고 주저앉는 사람들의 손을 이끌어 몇 발자국을 더 전진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 누구나 어렸을 적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재능, 바로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창의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지를 받아 들 때마다 하얀색 도화지를 꺼낸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종이를 바라보다 보면 내가 지금까지 교육받고, 경험했던 모든 것을 지워버리게 된다. 거기에 새로운 것을 그려 나간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말이다. 가끔씩 그 그림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면 잠시 정신을 되돌이켜 그것이 내가 가진 지혜와 경험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검증한다. 확실히 검열은 아니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이 설득력이 있는가 따질 뿐이지 그 내용을 간섭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매우 자유롭고 결과는 꽤 독창적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발한 착상이 완성되기도 한다. 그것이 내가 억지로 일군 나의 소소한 창의력의 비결이다. 그 소소한 창의력은 의도했던 대로 나를 남들보다 조금 앞서 나갈 수 있게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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