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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Jul 01. 2022

파란 벽돌-3

나의 특별함에 감사함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 아쉽게도 나의 일은, 나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타인이나 사회에 혁혁한 도움이 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큰돈을 벌게 해 준다거나 하는 거창한 동기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내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그 일이 나에게 잘 맞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소심한 성격에, 남들을 압도하는 뚜렷한 능력도 갖추지 못한 내가 그래도 뒤처지지 않고 내 동료들과 어깨를 비스무레 견주며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까닭은 나의 성격과 능력에 아주 딱 들어맞는 일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일은 천재성보다는 성실성을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그것은 학부 때 전공과목 공부를 할 때부터도 그러하였다. 나의 동료들 중에는 다시 태어나도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다. 교수님이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 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서너 개쯤은 더 챙길 줄 알았고, 똑같이 책 한 줄을 읽어도 행간에 숨겨진 원리를 스스로 깨우칠 만큼 무서운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재주를 부러워했고 그들의 방식을 모방했으나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깨어있는 시간을 모두 할애해, 때로는 잠을 줄여가면서 그들을 따라잡으려 했으나 그들은 안타까운 내 손을 뿌리치고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차이를 제대로 알아차리고 좌절할 줄 몰랐다. 그만큼 우둔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나의 길을 갔다. 느린 만큼 꾸준히 걸었고 미련한 만큼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꽃 같던 20대 시절, 나는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해보지 못했다. 다행히도 나는 성실하였다. 


그렇게 무던히 내 길을 걷다 보니, 길 옆 그늘가에 앉아 지친 다리를 주무르거나 곤한 낮잠을 자고 있는 친구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나는 그들 옆에서 같이 쉴 필요가 없었다. 느린 걸음은 나의 두꺼운 다리를 지치게 하지 않았고, 주위에 대한 무관심은 정신을 피로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속 걸었다. 그렇게 의과대학 4년을 보내니 나는 뜻밖에도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내가 동경해왔던 많은 친구들의 천재성을 성실함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성실함은 나의 신앙이자 희망이 되었다. 인턴과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남들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출근했고, 한 시간 더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바쁜 일과 중에 잠깐잠깐 나는 짬에도 나는 쉬지 않았다. 당시 나의 좌우명은 '후회 없는 하루'였다. 게으름 피우는 한 순간이 있어도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후회하고 수치스러워하였다. 한번 생긴 신념과 용기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성실함의 결과를 경험했으며 절실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성실함만이 나의 둔한 몸짓을 떠받혀줄 키다리 아저씨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전공의, 전임의 과정을 끝내고 학창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성실함이 무기가 될 수 없었다. 이제 내 옆에 서있는 동료들은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부지런함은 기본이었고 꾸준함은 필수였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무서운 속도로 뒤쳐질 뿐이었다.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고 싶다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갖추어야 했다. 학부 때 중요했던 지적인 총명함은 답이 되지 못하였다. 정해진 분량을 빠르게 습득해야 했던 속도감은 학문의 수준이 높아지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신에 깊이가 필요했다. 대학교수는 선생이자 학자이다. 학자의 임무는 지금까지 남이 알지 못하던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거나 기존의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을 풀어나갈 신박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한 가지 해결책을 깨우쳤다. 그것은 창의성이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것을 찾아내거나 전대미문의 방식을 창조해내려면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형태의 추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깨우쳤다고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 막 작은 근육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병아리가 제 힘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한 줌 공간에 가둬둔 무한의 장벽을 두드려 눈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으로 뛰쳐나가는 일이다. 차라리 성실함의 고통이 덜할 것이다. 창의성은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유혹을 무던히 이겨내거나 피곤해서 쓰러질 때 한걸음만 더 걷고 쉬자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인내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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