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짜리 소설] 도와줘요, 하이드 양(孃)-최종회

그녀들의 만찬

by 파란 벽돌

자, 이게 그 녹음 파일이에요. 이제 다시 들어볼 거예요. 선생님 앞에서요. 듣기 싫으시다고요? 그래도 들으셔야 해요. 선생님이, 아니 과장님이 어떻게 뇌물을 요구하고 성추행을 하셨는지. 그 유명한 한국병원 내과 과장님이 이런 짓을 하셔도 되는 걸까요? 그것도 원장님 되실 분이 말이지요.

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요? 글쎄요, 이번 일을 꾸민 미스 하이드를 깨워주신 분이 바로 과장님이신데요. 물론 지도희라도 할 수는 있었을 것 같지만요.

네? 용서해달라고요? 이게 용서받을 수 있는 짓인가요?

그러다가 나도 다친다고요? 잠깐만요, 잠깐만 생각 좀 해보고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5년 전처럼요. 큰 병원 과장에게 뇌물을 제안하고, 그것을 설득시키려 성적으로 유혹했다고 의심받으면서요. 그럴 수는 없죠. 또 당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조심을 했죠. 과장님이 녹음 파일을 잘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나에게 문제가 될만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모두 과장님이 시킨 것으로 들리죠.


그래요, 과장님이 따라 주신 술에 미스 하이드가 깨어났어요. 오랜만이라 그런지 단 몇 잔 만에요. 괜히 걱정했었네요. 그 녀석은 이번에도 잘해주었어요. 이 방법을 내게 가르쳐 주고, 과장님 앞에서 훌륭하게 연극도 해주었지요. 내가 말했죠? 미스 하이드는 원하는 걸 받는 것엔 능숙하지만 주는 데는 인색해요. 그리고 항상 배고파하지요. 거기에다가 모든 것에 철두철미한 지도희가 함께 있었고요.

혹시 몰라서 저 아가씨에게도 내가 소리를 지르면 문을 열고 들어와 목격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네, 고마워요, 아가씨. 이건 수고비예요.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좋아요.”


나는 날개를 달아야 해요. 계속해서 태양을 향해 날아가야 한단 말이죠. 그런데, 내가 과장님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얻는 게 무엇일까요? 과장님이 선 교수처럼 망신을 당하고 병원을 그만두든지 말든지 나는 상관없어요. 어쩌면 그러다가 내가 또 무언가를 잃을지도 몰라요. 고객을 배신한 직원으로서 업계에서 내쳐질지도 모르죠. 법적인 책임은 없더라도 그놈의 더러운 도의적 책임과 사회적 편견을 또 짊어져야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내가 과장님께 제안할 거예요. 과장님의 녹음 파일을 공개하지 않는 대신 과장님이 일산제약을 위해 조금 노력해 주셔야겠어요. 어떻게 도와주실지는 말 안해도 잘 아실 거예요. 내일 당장 하실 수도 있다는 별 것 아닌 일 말이에요. 따로 보답은 없어요. 녹음 파일을 숨겨드리는 것 외에는. 아시겠지요?


아, 미스 하이드가 돌아가려 하네요. 아직은 그러면 안 되니까 잠시 술 한잔해야겠어요.

그런데 아직도 궁금한 게 있어요.

왜, 미스 하이드는 신입생 환영식 때 내 안에서 기어 나왔을까요? 나는 어째서 그 녀석에게 기대고 무엇을 위로받으려 했던 걸까요? 도대체 미스 하이드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선 교수 회식 때의 용감한 일탈, 아니 섣부른 폭로는 누가 한 걸까요? 정말로 미스 하이드일까요? 아니면 지도희였을까요? 그날 이후로 후회하고 있던 나는 과연 지도희일까요? 미스 하이드일까요? 이번 계약 건은 둘 중 누구의 공일까요? 지도희일까요, 아니면 미스 하이드일까요? 아니 지금 이걸 질문하고 있는 나는 도대체 나일까요, 아닐까요?

선생님은 아시겠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