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요, 하이드 양
“그나저나, 도희 씨, 그 생각은 나중에 회사 돌아가서 천천히 해보고, 잠시 이쪽으로 와봐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먼.”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과장이 자기 옆자리의 방석을 두드렸어요.
“네? 과장님 옆자리로요? 아니,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 회사 규정도 있고 해서요.”
“어허, 규정대로만 살면 어찌 세상이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겠어요. 이 계약도 마찬가지이고. 안 그래?”
“그건 정말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누가 보고, 듣기라도 하면…. 과장님이 괜한 오해를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괜한 오해라니. 옆방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가 보고 들을 수 있겠나, 그건 내가 걱정할 테니까 이리로 와봐요.”
아마 과장이 일부러 옆방을 비워놓으라 했나 봐요. 정말 주변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어요. 과장은 테이블 건너편의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무턱대고 자기 쪽으로 잡아끌었어요. 얼마나 힘이 센지 끌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손을 내치자니 적어도 테이블이 엎어지거나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쏟아질 게 뻔한데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50억 계약은커녕 과장을 다시 볼 수도 없을 거거든요. 나는 과장 옆자리로 쓰러지듯 옮겨졌어요. 그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더욱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어요. 본의 아니게 그의 품에 안기는 자세가 되었어요. 정말 이건 생각지도 못한 강공이었어요. 점점 승부는 밀리고 있었어요. 만회할 수 있을까요?
"도희 씨는 참 똑똑하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다니까. 이러니 내가 어떻게 도희 씨 부탁을 안 들어줄 수 있겠어. 하지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안 그래?"
어느새 다른 과장의 한 손은 내 목덜미를 돌아 가슴에 얹혀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무릎 위로 올라왔어요. 남자들은 왜 그리 시도 때도 없이 여자를 못 주물러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자칫 그것에 성공했다 싶으면, 왜 여자를 정복한 듯 겁이 없어지는지도요. 과장의 얼굴을 덮어버린 미스터 하이드의 비릿한 냄새가 느껴졌어요. 그 냄새는 점점 가까워졌고 그가 입을 맞추려 하며 말했어요.
“도희 씨가 내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하면 그까짓 약 하나 바꾸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일 당장 해버릴 수도 있는 쉬운 일이라고. 그게 5억이든, 50억 매출이든 상관없다고. 허허허."
나는 눈을 질끈 감았어요. 이제는 더 도망갈 구석도 없었어요. 이대로 승부가 끝나버리는 것일까요?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어요. 정말, 다행이었어요. 내 비명 소리를 들었는지 식사 시중들던 아가씨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거든요. 아가씨는 너무 놀라서 뱀처럼 나를 휘감고 있는 과장의 몸짓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어요. 나는 당황한 과장을 힘 있게 밀쳐냈어요.
“죄송합니다. 저는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위기를 벗어난 나는 서둘러 방 밖으로 나왔어요. 너무 놀랐어요. 과장이 이 정도로 무서운 사람일지는 몰랐거든요. 화장실로 갔어요. 거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기 위해 잠시 숨을 골랐어요. 그리고는 윗저고리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을 꺼냈어요. 화면을 켜보니 '녹음 중' 표시가 떠 있었어요. 다행히 잘 녹음되고 있었어요. 버튼을 눌러 녹음을 중단했지요.(계속)
*안 그러시겠지만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이것은 제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상황입니다. 이런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