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미켈란젤로의 고백-3

르네상스로의 초대

by 파란 벽돌

“아무리 그래도 레오나르도는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버린 사생아요. 언제부터 사생아가 귀족인 나의 작품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되었소?”
미켈란젤로는 어릴 적부터 다혈질이고, 독선적이며, 교만하기까지 했다. 몰락한 귀족 출신이었지만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것이 얼마나 눈꼴시었는지 스승인 기를란다요의 화실에서 함께 도제 생활을 하던 동료가 그의 코뼈를 내려앉게 한 일도 있었다. 그의 코가 지금까지도 비뚤어진 이유이다. 이런 미켈란젤로이니 사생아 출신인 레오나르도를 얼마나 멸시했겠는가?


미켈란젤로의 초상화, 자코피도 델 콘테, 60세경의 미켈란젤로를 그린 것입니다. 그의 콧등이 납작하게 내려앉은 것이 잘 보이시나요?


“그가 근본 없는 사생아라 해도 좋소. 성스러운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라면 출생의 비천함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수도원 식당에 그려진 그의 작품을 보고 수도사들이 진짜 예수님을 뵈었다고 집었던 빵을 떨어뜨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 않소. 그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자요. 그의 손으로 예수님을 다시 살려낸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전 이탈리아가 그를 찬양하는 것이오.”


“여보시오, 나리. 그럼 그 잘난 레오나르도에게 다비드를 만들어달라 하시지. 왜 나에게 맡겼소? 그가 예수님을 살려냈다고요? 그렇다면 나는 성모님을 살려냈소. 내가 로마 산피에트로 성당에 만든 피에타(죽은 예수를 안고 눈물 흘리는 성모를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걸작 중 하나)는 못 보았소? 차가운 대리석으로 만든 성모님으로부터 모두가 뜨거운 피와 눈물을 느꼈소. 그것도 똑같이 6년 전이요. 하지만 내가 피에타를 완성한 것은 23세,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완성한 것은 46세, 도대체 누가 더 위대하다 생각하시오? 피에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그 성모님의 옷자락에 당당히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라고 새겨놓은 것은 못 보았소? 나는 피렌체 사람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피렌체를 사랑합니다. 레오나르도는 같은 토스카나라 하지만 엄연히 산골 구석 빈치 사람이요. 그는 나만큼 이 도시를, 그리고 저 다비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피에타, 미켈란젤로, 1498-1499,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그 사진도 찍어왔는데 찾지를 못하겠네요.ㅠㅠ 찾으면 추가하겠습니다.


“주의 영화로움을 찬양하는 예술품에, 그리고 그 작가들에게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소? 또 그렇게 간절했다면 왜 지난 25일 회의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나오지 않은 사이, 레오나르도의 설득력 있는 한마디 연설로 위원회는 이미 마음이 반 이상 로기아쪽으로 기울었습니다. “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와 달리 고급스러운 취향을 즐겼고 귀족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것이 미켈란젤로에게는 귀족들에 대한 아부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원래 귀족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그들에게 아첨하여 그들로부터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받아먹으려는 사람이오. 그의 혀는 뱀과 같소. 현란한 말솜씨에 속으면 안된단 말이오.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이 미켈란젤로에 대한 시기심으로 다비드를 햇빛 들지 않는 로기아 구석에 몰아넣으려 하고 있소. 절대 안될 말이오. 다비드가 있을 곳은 저 광장 한복판이오.”


“레오나르도의 이름만 들어도 그리 화를 내다니, 오히려 당신이 그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 아닙니까?”


“뭐라고, 나 위대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뭘로 보고 하는 소리요. 에잇, 나가시오. 더는 말하기 싫소. 그리고, 시의회에 가서 분명히 말하시오. 이 위대한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를 로기아에 처박느니 산산이 부숴버릴 것이라고 말이요.”
미켈란젤로는 마르코 시의원을 쫓아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화를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성격 급한 그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계속)


*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과 함께 하는 이탈리아 여행을 즐기고 계신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향한 미켈란젤로의 분노는 어떤 사건들을 만들어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