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미켈란젤로의 고백-4

르네상스로의 초대

by 파란 벽돌

3년 전 피렌체에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지금부터 약 40년 전인 1464년, 이 도시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의 후원으로 피렌체 성당은 도시의 서북쪽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카라라 채석장으로부터 품질 좋은 거대한 대리석을 사들여 왔다. 구입 가격도 가격이지만, 다치지 않게 배에 실어 나르느라 막대한 운반비가 들었다. 교회는 이 대리석으로 이교도를 물리친 유대의 왕 다비드상을 제작하기로 하였고, 그 당시 유명했던 조각가 두치오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두치오는 2년간 조각상의 발과 가슴, 그리고 옷의 주름까지 작업하는 등 성실하게 일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스승 도나텔로가 사망하자 작업을 중단해 버렸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성당은 게으른 두치오를 해고하고, 도시의 또 다른 조각가 로셀리노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 그가 1년을 허비하다 포기했을 때 피렌체 시민들은 오히려 기뻐했다. 미숙한 그의 정 끝은 늘 귀한 대리석을 망가뜨리려 빗나가다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멈추곤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대리석은 그대로 25년간 성당 작업실에 방치되어 있었다. 자신의 껍질을 벗겨 내고 안에 품고 있는 빛나는 형상을 드러내 줄 위대한 조각가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것이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등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고 7년 만에 피렌체로 금의환향한 1501년의 젊은 미켈란젤로였다. 이제 그는 3년의 작업을 거쳐 상처 난 대리석으로부터 희대의 명작 다비드상을 거의 완성해 가고 있었다.


시뇨리아 광장의 다비드상.jpeg 시뇨리아 광장에 설치된 다비드상, 사실 이것은 복제품입니다. 진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조언대로 안전한 보존을 위해 1879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아무래도 두오모의 소데리니 추기경을 만나 봐야겠어. 그를 설득한다면 레오나르도의 독선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돌가루로 하얗게 뒤덮인 작업복을 벗고 외출복을 꺼내 입었다. 그가 만나려 하는 소데리니 추기경은 두오모(피렌체 대성당)에 소속되어 있는 신부로서 피렌체의 유력인사였다. 그의 동생이 피렌체 최고 권력자인 피에로 소데리니 총독이었다. 따라서 추기경은 교회와 시의회에 모두 막대한 힘을 미칠 수 있었다. 설득을 하려면 그부터 해야 했고, 힘을 빌리자면 그의 힘이 필요했다.

미켈란젤로는 작업장을 나와 팔라쵸(궁전이라는 뜻, 당시는 시의회 건물)가 있는 광장을 지나 두오모로 향하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 게으름뱅이 늙은이. 작품 하나 가지고 몇 년씩 시간을 끌면서 완성도 못 한 것이 수두룩하다지. 밀라노에서도 결국 스포르차의 기마상을 만들다 말았다면서. 조각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자가 감히 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왈가왈부하다니…’


피렌체 두오모.jpeg 피렌체 대성당. 15세기 중반 르네상스 건축을 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설계된 돔이 유명하여 두오모라고 불립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웅장한 두오모가 앞을 가로막았다. 커다란 성당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 미켈란젤로는 성수반에서 성수를 찍어 거칠게 성호를 그었다. 싸늘한 제대에서는 젊은 보좌 신부가 미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에게 추기경의 안부를 물었다. 추기경은 다행히 두오모에 있었다.

(계속)


*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과 함께 하는 이탈리아 여행을 즐기고 계신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향한 미켈란젤로의 분노는 어떤 사건들을 만들어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