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미켈란젤로의 고백-9

르네상스로의 초대

by 파란 벽돌

며칠 후, 팔라쵸(시의회 건물)에서 레오나르도에게 전갈이 왔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의 저자, 당시에는 피렌체 공화정의 제2 서기관)의 호출이었다.

“서기관이 갑자기 왜 나를?”


니콜로 마키아벨리. 그 유명한 군주론의 저자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 시대에는 피렌체 공화정의 제2 서기장을 지냈습니다. 아직 군주론 집필에 들어가기 전입니다.


레오나르도에게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마키아벨리는 이제 겨우 35세의 젊은 정치인이었다. 공화국을 개혁해 나아가고 있는 10인 위원회의 의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공화국 시의회의 서열 3위인 제2 서기관으로서 국내 문제 및 전쟁 업무를 관장하고 있었다. 그의 뛰어난 능력은 그를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그는 언제 입을 열고 언제 입을 닫아야 할지 정확히 아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고, 이것은 외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의 갈등에 주재 외교관을 제치고 매번 그가 불려 다니며 파견되었다. 그의 거침없는 열변은 피렌체 코앞에까지 진군했던 체사레 보르자의 군대로부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도시를 지켜내기도 하였고, 시간을 잊은 듯한 끈질긴 침묵은 부당한 요구를 거듭하던 프랑스가 제풀에 치쳐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레오나르도는 2년 전 체사레 보르자의 군사 고문으로서 우르비노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피렌체를 구하려는 명 협상가 마키아벨리가 찾아왔다. 레오나르도는 마키아벨리가 탁월한 식견과 달변으로 체사레 보르자를 설득하여 피렌체를 지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천재와 영웅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았고 쉽게 잊지도 않았다. 그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체사레 보르자.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이탈리아의 추기경, 정치가, 장군이었습니다. 현명함과 결단력, 잔인함이 어우러진 인물로서 군주론의 모델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오래전 일을 떠올리며 팔라쵸의 제2서기관실로 들어섰다.

“오, 서기관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레오나르도가 무릎 꿇어 마키아벨리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오, 은총 받은 화가, 레오나르도여,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구려.”

“그런데 서기관님, 갑자기 미천한 저를 친히 부르신 이유가…”

“레오나르도, 오늘은 당신답지 않게 급하시군요. 그럼 나도 서둘러볼까? 잠깐 나를 따라오시겠소?”

(계속)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격랑의 시대에 군주론의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그리고 군주론의 모델이었던 체사레 보르자와 함께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과연 레오나르도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려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