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미켈란젤로의 고백-16

르네상스로의 초대

by 파란 벽돌

머뭇거리고 있는 미켈란젤로에게 로마로 오라는 교황의 전갈이 수차례 더 왔다. 처음에는 설득에서 채근으로, 마지막에는 협박으로 바뀌었다.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공포스러워 하는 교황의 명령을 한낱 조각가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소중한 벽화라 해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미켈란젤로는 짐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절망감과 수치심에 치를 떨었다.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때 쯤이면 레오나르도는 그의 위대한 작품을 완성하고 어디론가 떠나 있을 것이다. 그 가공할 만한 대작 앞에서 미켈란젤로는 비참한 패배감을 곱씹으며 초라한 그의 그림을 말없이 완성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피렌체 시민들은 그런 그를 다비드의 아버지가 아닌 패배자 미켈란젤로로 기억할 것이다. 교황의 편지를 구겨 쥔 채 레오나르도는 주저앉았다.

이 두 거장은 정말 시기와 경쟁만 했었을까요? 서로의 천재성에 대한 경외감으로 극적인 화해를 하지는 않았을까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처럼 레오나르도가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벽 앞에 앉아 말없이 자신의 그려놓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눈동자는 몽롱해져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어렵게 말을 붙였다.

“레오나르도, 그림이 꽤 훌륭하군요. 비록 흘러내리기는 하지만 저 선명한 색상도요. 도대체 어떤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오? 거기다가 게으름뱅이 치고는 작업 속도가 그렇게 늦지도 않고요.”

“오, 미켈란젤로, 무슨 일이오? 나에게 말을 다 걸다니?”

레오나르도는 놀란 듯 고개를 돌려 미켈란젤로를 쳐다보았다. 어찌나 벽화에 집중하고 있었던지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작별 인사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나는 잠시만 로마에 다녀와야겠소. 교황님의 명이요. 그의 영묘를 완성해 달라는. 이탈리아 땅에 그런 작업을 맡을 만한 사람이 이 위대한 미켈란젤로 아니면 없다지 뭐요. 하하하.... 아쉽지만 당신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못할 것 같소.”

“아니, 뭐라고? 벽화를 포기한다는 말인가?”

“아니오. 영묘 작업이 끝나는 대로 다시 돌아오겠소. 부지런히 서두른다면 1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오. 그런 다음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벽화를 완성하겠소. 그동안 당신이 먼저 그림을 마치고 떠나도 좋소. 워낙에 굼벵이이니 그럴 리도 없겠지만. 다만 이것만은 알아 두시오. 나는 지금 당신과의 대결이 무서워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오.”

“오, 주여.”
레오나르도는 뜻 모를 외침과 함께 미켈란젤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의 시선을 오래 마주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의 눈맞춤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의 눈에 비치는 이상한 흔들림을 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자신이 떠난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레오나르도가 비겁하게 자신과의 승부를 피한다고 조롱하거나 멸시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그런 차가움이 배어 있지 않았다. 대신에 안타까움, 아쉬움, 그리고 절망감 같은 것이 묻어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잘못 보았겠지. 내가 떠나면 당장에 기뻐할 사람인데. 요망한 늙은이, 이제 눈빛만으로도 젊은이를 속이려 드는군. 어서 영묘 작업을 마치고 와서 저 늙은이의 느린 손을 따라 잡아야겠어. 서둘러 채색하면 될 거야. 로마에서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연구하면 그를 뛰어넘을 비결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라.”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두 천재를 존경하여 그림에 등장시켰는데 붉은 원 안에 있는 플라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파란 원의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가 모델입니다. 비슷하죠


레오나르도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떠나는 미켈란젤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의 시선을 피하고 서둘러 회의장을 나섰다. 더 이상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빨리 영묘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돌아와 그의 작품을 뒤덮을 만한 그림을 그리자. 그러면 돼. 지금 나는 그를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니까.”

(계속)


*사실은 미켈란젤로는 이전에 로마에 머물면서 이미 율리우스 2세의 영묘 작업을 의뢰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교황이 영묘를 세우기 위해 구입한 대리석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자 분노하여 로마를 탈출합니다. 그러다가 1506년 2월 다시 교황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 본격적으로 영묘 조각에 들어가게 되지요. 제가 극적인 재미를 위해 각색한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