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미켈란젤로의 고백-17

르네상스로의 초대

by 파란 벽돌

피렌체를 떠난 미켈란젤로는 로마 교황청을 향해 마차를 달렸다. 하지만 마음속은 온통 '카시나 전투' 벽화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스케치해 놓은 병사들의 몸을 어떤 선으로, 어떤 색으로 그려낼지가 고민이었다. 그들의 긴박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용병대장의 뿔나팔 소리와 병사들의 어수선한 외침을 들려줄 바로 그 색칠이 문제였다. 마주 선 레오나르도의 뛰어난 그림에 압도당하여 어두움으로 묻혀버리지 않을, 스스로 빛을 내는 현란한 색감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아직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로마로 향하는 며칠 내내 미켈란젤로는 열병을 앓는 것처럼 괴로워했다.


로마는 활기에 차 있었다. 율리우스 2세가 심혈을 기울여 재건축하고 있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건물을 다시 올리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벽돌이 필요했다. 갑작스러운 건축 재료의 공급에 골머리를 앓던 교황청은 무너진 콜로세움으로 눈길을 돌렸다. 검투사들의 피가 묻은 콜로세움의 벽돌로 성스러운 하느님의 대성전을 쌓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대의 마차가 콜로세움의 벽돌을 산 피에트로 광장으로 실어 날랐다. 일군들의 땀과 공사장의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그곳에 교황이 서 있었다. 공사의 총감독인 브라만테를 독려하여 대성당의 조속한 완성을 재촉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도착하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교황이 끼고 있는 어부의 반지에 입맞춤했다. 그리고 영묘 조성 사업의 계획을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교황의 영묘는 소박하지 않았다. 그의 탐욕처럼 거대하고 화려했다. 족히 2-3년이 걸릴 만한 작업이었다. 교황은 거침없이 명령하였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로 '애정보다는 공포'로 약자를 다루는 군주였다. 예술가를 무시하고, 독촉하고, 협박하는 교황에 대한 존경심은 미켈란젤로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애정 없는 조각으로 하루빨리 교황의 요구를 맞추어주고 피렌체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인내하며 정을 쪼고 끌을 긁었다. 1년 후 영묘의 장식이 완성되었다.


율리우스 2세 영묘.jpeg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영묘 장식.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교활한 군주는 만족할 줄 몰랐다. 새로이 개축을 마쳐가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아무리 서둘러도 3-4년이나 걸릴 수 있는 웅장한 작업이었다. 미켈란젤로는 거부했다. 자신은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라는 것이 이번에도 핑곗거리였다. 교황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피렌체에서 그리고 있던 카시나 전투 벽화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몇 년을 소모하여 천장화를 그리든지, 아니면 거절에 대한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미켈란젤로는 고민했다. 그는 피렌체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레오나르도와 등을 맞대고 승부를 겨루고 싶었다. 하지만 고집을 피우고 교황의 명을 거역했다가는 죽음이 피렌체로 향하는 길을 영원히 가로막을 수 있었다.


어느 누구라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 미켈란젤로에게는 며칠간을 생각해야 할 고민거리가 된다는 것이 교황에게는 신기했다. 미켈란젤로가 당연히 승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교황은, 이제 그가 승낙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두 사내의 고민이 깊어가던 며칠이 지났고 결국 미켈란젤로가 교황 앞에 섰다.

시스티나 성당.jpeg
시스티나 성당 내부.jpeg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외부와 내부. 이곳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하죠. 내부에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하, 미천한 저에게 맡겨주신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작업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모자라는 재주로 하나님의 위업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다만 이번 일을 마치는 즉시 제 고향 피렌체로 돌아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오, 위대한 미켈란젤로, 고맙소. 그것은 내가 꼭 약속하지.”

“힘을 다해 서둘러 벽화를 완성하겠습니다.”

“벽화는 일전에 내가 얘기했듯이 구약에 대한 내용으로 했으면 좋겠소. 이왕이면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것이 좋겠군. 그것이 가능하겠소?”

“예, 성하.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알았소. 그대의 부탁은 내가 꼭 지켜주겠소. 그림을 마치는 대로 피렌체로 돌아가도 좋소.”

“감사합니다. 성하.”

(계속)


*교황의 강요에 의해 미켈란젤로는 할 수 없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미켈란젤로가 또 하나의 위대한 걸작을 남기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저는 최근에 시스티나 성당에 다시 갈 기회가 있었는데 천장화를 비롯해 사방을 둘러싼 아름다운 명화들이 주는 감동에 압도당하여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이더군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라서 그 감동을 생생히 전달해드리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시스티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벽화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연작 소설로 엮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