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미켈란젤로의 고백-15

르네상스로의 초대

by 파란 벽돌

밑그림에 먼저 색을 입히기 시작한 것은 레오나르도였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화가들은 벽화를 채색할 때 주로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채색하는 방법으로서 주로 수채화 톤의 색깔을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이러한 방법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의 스승인 베로키오가 달걀노른자를 안료와 섞는 템페라 기법만을 사용하였던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북부 플랑드르에서 발전하여 전해진 새로운 유화 기법이 그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벽화에도 유화적인 채색법을 살려 더욱 강렬한 색을 만들어 내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부터 안료의 개발과 실험에 주력하였다. ‘안기아리 전투’에서도 레오나르도 특유의 실험 정신이 발휘되었다. 안료에 기름을 섞어 벽을 칠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느리게 마르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물감 위로 열을 가하였다. 과정은 지루했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물감은 그림 위로 연신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는 단념하지 않고 칠하고 또 칠했다.

천지창조.jpeg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가 바로 프레스코화입니다. 그림의 색감이 비교적 투명한 수채화 풍이지요?
모나리자.jpeg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잘 아시다시피 목판에 유화로 그린 것이에요. 레오나르도는 벽화에도 이렇게 선명하고 강렬한 색을 사용하기 위해 안료 개발에 힘썼습니다. 성공했을까요?

그것을 바라보는 미켈란젤로는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아직 프레스코 기법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그는 레오나르도가 만들어내는 신비한 색깔들을 경악하며 바라보았다. 만일 그 물감이 흘러내리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는 날이 온다면 자신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1506년의 봄이 찾아왔다. 조급하게 벽화의 채색을 준비하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뜻밖에도 교황청에서 온 것이었다. 그는 잠시 붓을 놓고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보낸 것이었다.

“… 미켈란젤로, 나는 하느님을 위한 위업에 나의 안전과 휴식을 잊은 지 오래네. 하지만 흙먼지와 피로 뒤덮인 전장을 달리면서도 나는 결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예술과 그것을 위해 힘쓰는 예술가들을 잊은 적이 없네. 오히려 그들을 지원하는데 온 힘을 아끼지 않았네.

...위대한 미켈란젤로, 나도 이제 나의 영원한 안식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피곤한 나의 영혼을 눕힐 만한 곳은 마련되지 않았네. 그래서 이제 나의 영묘(靈墓)를 준비하려 하네. 주님의 사제로서 나는 결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안식처를 바라지 않네. 다만 소박하더라고 아름답게 꾸며지길 바랄 뿐이네. 이러한 작은 꿈을 이루어줄 예술가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인 자네뿐일 것으로 생각하네.

...미켈란젤로, 나는 지금 반복되는 성전(聖戰)의 짧은 틈을 이용해 로마에 머물고 있네. 언제 다시 출전의 뿔나팔이 울릴지 모르네. 그러니 하루빨리 자네가 내게로 와 부탁을 들어주기를 바라네.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문체는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호전적이고 야심에 찬 인물이었다. 교황에 오르자마자 이탈리아 반도를 신권(神權)하에 아우르고자 하였고 그로 인해 온 이탈리아에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중히 부탁한다고 하였으나 그것이 부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부탁’을 저버리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미켈란젤로는 잘 알고 있었다. 설령 목숨을 걸고 거절하고 싶더라도, 교황 앞에 친히 나가 거절하고 그 이유를 밝혀야 했다.


안기아리 채색1.jpeg 안기아리 전투의 16세기 모사본. 제 생각에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이 이 정도의 강렬한 색감으로 칠해졌을 것 같아요. 물론 미완성이었지만 말이죠.


“안 돼, 지금 떠나면 그림을 완성 못 할지도 몰라. 저 굼벵이 레오나르도도 이미 밑그림을 완성하고 채색(彩色)을 하고 있지 않나. 지금까지 작업만 봐도 내 그림을 압도하고 있어. 그의 그림은 살아있어. 그림 속의 병사들은 근육을 써서 움직이고, 말들은 발길질하며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어. 비록 계속 실패하고는 있지만 눈동자가 시릴 만큼 뚜렷한 저 물감들이 온전하게 그림에 입혀지는 날이면 당장이라도 저 병사들이, 저 말들이 내 앞으로 튀어나올지도 몰라. 그의 그림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함성, 말 울음과 말발굽 소리에 지금도 내 고막이 찢어질 정도야. 분발해야 해. 멈출 수는 없어. 이렇게 그에게 뒤질 수는 없다고.”

(계속)


* 레오나르도의 벽화는 구도뿐만 아니라 그 색이 압권이었습니다. 다음 회에 말씀드리겠지만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부터 그림에 들이는 시간만큼 많은 시간을 유화풍의 색을 입힐 수 있는 안료 개발에 할애했거든요. 그의 노력은 반은 성공, 반은 실패였습니다.

어떻게 재미있게 읽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소설이 다큐멘터리가 되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