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로의 초대
시간은 흘러 1519년 5월이 되었다. 이제 미켈란젤로의 머리에도 하얀 백발이 듬성듬성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작업실에서 대리석을 쪼고 있는 그에게 프랑스 뱃사람 한 명이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편지가 한 통 들려 있었다. 봉투 앞면에는 그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친애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는 봉투를 뒤집어 발신인을 찾아보았다.
‘당신의 친구로부터.’
“이 편지는 누가 보낸 것이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클루 뤼세 왕궁에서 부쳐진 것이라고만 들었습니다.”
“클루 뤼세 왕궁이라면 프랑스 왕궁? 그곳엔 내가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의아해하며 봉투를 뜯었다. 간결한 문체의 편지지가 들어 있었다. 어딘가 낯익은 필체였다.
“위대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자네는 이렇게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지, 아마? 누군가 자네에게 ‘미켈란젤로에게’라고 쓴 편지를 보내자, 자네는 그 편지를 뜯지도 않은 채 찢어버렸다고 하더군. 내 편지도 읽히지 못한 채 찢겨 버릴까 봐 자네의 호칭을 가장 정성 들여 썼네. 하하하.... 자네는 그게 매력이었네. 범접할 수 없는 실력에, 건방질 정도라고 해야 할 자신감. 다른 사람들은 자네를 교만하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네. 자네의 재능에는 '교만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네. 자네가 아무리 교만하다 해도 자네는 그 이상으로 훌륭한 예술가이니까.”
미켈란젤로는 흥미를 느끼고 읽어 내려갔다. 아직 편지를 보낸 친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피렌체 광장에서 자네가 나에게 보였던 갑작스러운 분노의 이유를 처음에는 알 수 없었네. 나도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자네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네. 그래서 자네의 코를 납작하게 하기 위해 500인의 방의 벽화 의뢰를 수락하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것이네. 벽화의 스케치가 한창이던 와중에 우연히 마르코 시의원을 만나게 되었네. 그로부터 다비드를 라기오에 설치하고자 했던 나의 주장을 듣고 자네가 분노했다는 소리를 들었네. 그것이 나에 대한 자네의 원망과 증오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하지만 미켈란젤로, 그것은 자네의 오해였네. 진실로, 진실로, 나는 다비드가 사랑스러웠네. 그렇게 아름다운 석상을 죽기 전에 내 앞에 보여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지경이었네. 물론 젊은 나이에 그런 작품을 완성한 자네에게 약간의 질투도 느끼지 않았다 하면 그것은 거짓일세. 하지만 진정으로 나는 다비드 석상이 오래 보존되기를 바랐네. 다비드는 온 이탈리아 시민에게,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영원히 사랑받아야 할 작품일세. 그런 명작이 뜨거운 태양과 차디찬 빗물에 침식되고, 바람에 쓸려 씻겨 간다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었네. 그래서 라기오에 설치하자 주장한 것일세. 다비드가 싫어서, 자네에 대한 시기로 그렇게 고집한 것이 결코 아닐세....”
미켈란젤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었다.
(계속)
* 클루 궁전에서 부쳐진 서신의 주인공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군요. 미켈란젤로의 분노의 원인을 미리 알았던 다 빈치는 왜 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림을 같이 그린 지 10년이 더 훌쩍 지난 이 시점에서 레오나르도는 왜 갑자기 미켈란젤로에게 편지를 보낸 것일까요?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