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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Aug 03. 2023

“범죄가 되는지 몰랐어요”

사건을 접하다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법에 위반되는지 몰랐어요', '그런 법이 있었나요?', '처벌받을 일인지 몰랐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ignorantia juris nocet).”라는 로마법 법언을 들어 설명합니다.


표현 그대로만 보면 법을 모르고 한 잘못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법을 처음 공부하던 시절에 대학교 1학년 법학 입문 수업에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많은 의문이 드는 말이었습니다.
죄가 되는지 모르고 한 행동을 처벌할 수 있을까?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한 행동에도 책임을 져야 할까?


형법학에서는 어떤 행동이 범죄가 되는지 판단할 때에 항상 객관적 요소와 주관적 요소를 나누어 판단합니다. 객관적 요소는 겉으로 한 행동 그것을 말하고, 주관적 요소는 그 행동을 할 당시 그 사람의 내심의 의사를 말합니다. 주관적 요소를 다시 고의와 위법성의 인식으로 나눕니다. 형법학은 범죄가 성립되려면 구성요건, 위법성, 책임의 세가지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퀘스트 같은 겁니다. 구성요건이 인정되면 위법성, 책임 단계까지 인정되야 범죄가 성립합니다. 고의와 위법성 인식은 둘다 범죄의 주관적 요소임과 동시에 고의는 구성요건의 한 요소이고, 위법성의 인식은 책임의 한 요소입니다. 내 행동이 범죄가 되는지 모르고 했다면, 주관적 요소가 문제되겠지요. 그래서 고의가 없다고 봐야 할지,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지 형법학에서는 다소 복잡한 논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의미가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지극히 학술적인 논의이지요. 형법학은 상당히 구조적이거든요. 법을 전공하는 사람들만 이해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실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머릿 속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제 말이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 형법학의 구조를 알고 이를 생각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더구나 범죄를 저지를 때에는 “내가 어떤 금지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인식 혹은 “뭔가 잘못된 행위지만 하겠다”는 결심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미리 계획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경우에도 범죄가 성립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 정도로도 주관적 요소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어떤 법률에 위반되는 행동인지 알고 행위를 했을 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법률에 위반된다는 명확한 인식은 변호사라도 쉽지 않거든요. (대한민국에 법이 얼마나 많은데요)


위법성은 공동체에서 지켜져야 할 어떤 가치를 위반한다는 인식 정도로 충분합니다.


남의 신체나 생명에 해를 끼치는 것, 남이 애써 만든 저작물을 허락 없이 함부로 사용하는 것,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등등 함께 살아가는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회화되는 공동체의 가치를 말합니다. 물론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과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고,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 보다는 좁은 범위일 가능성이 높지요.


오히려 법을 어긴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덕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옳다는 확신에 차 행동에 나아간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하기도 합니다. 전쟁 지역으로 여행이 금지된 우크라이나로 불법 출국한 사람들이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지요. “군인으로서 부당한 전쟁을 모른척 할 수 없으니 다녀와서 처벌받겠습니다.”라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바로 이겁니다. 혹은 선교를 목적으로 여행이 금지된 지역으로 출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확신범으로 보아 역시 처벌됩니다.


법률의 부지와 구분해야 될 개념으로 “법률의 착오”가 있어요.

자기 행위가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법에 위반되는 행위였던 경우에 "법률에 위반되는지 몰랐어요"라고 주장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규정입니다.  법률의 착오로 인정된다면 처벌받지 않게 됩니다. 다만 법원이 "이 법률을 몰랐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군요."라고 인정해야 처벌받지 않게 됩니다.


형법
제16조 (법률의 착오)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


법률의 부지는 달리 보면 법률의 착오일수도 있지요. 즉 법에 위반되는지 몰랐던 이유가 법이 변경되었거나 새로 생겼는데 몰랐거나 일반적으로는 법에 위반되지만 나의 특별한 경우에는 위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경우를 법률의 착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 법률의 착오도 법률의 부지에서와 같이 공동체에서 지켜져야 할 어떠한 가치를 어긴다는 인식을 잘못한 경우를 말합니다. 구체적인 법률을 인식했어야 하는데 잘못 인식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법원의 입장에서 거의 대부분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요.


정말로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다만 건축법, 세법, 환경법 같은 법을 위반한 경우는 이 주장을 해볼만도 합니다. 이런 법을 위반해도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거든요. 행정형법이라 부르고, 위반하면 행정범이라 분류합니다. 어떤 땅이 허가를 받고 건물을 지어야 하는지 몰랐다거나, 축산폐수시설을 어떤 규모로 마련해야 하는지 정확히 몰랐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실제로 이런 행정 관련 법들은 디테일하고 자주 바뀌고 매우 전문적이고 표현이 불명확한 경우도 많습니다.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하고 했는데도 그 공무원이 법 해석을 잘못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고의범이라기보다는 과실범에 가깝게 보이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법률의 착오까지 인정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주장은 해볼만 하지요. 이런 행정형법 위반의 경우, 고의범이라기보다는 과실범에 가깝게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률의 착오까지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위반을 인정하면 검찰 단계에서 기소유예나 판결에서 집행유예와 같은 잘못을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고의성이 적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번 한 번만 용서합니다."라는 결정을 받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지고 가거나, 지하철에서 여학생의 치마 속을 촬영하는, 길 가던 사람을 칼로 찌르는 이런 행위를 해놓고 하면 안 되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법률의 부지에 정당한 이유가 되는지 판단하기는커녕 모두의 공분을 살 겁니다. 법원에서는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라는 이유로 더욱 엄벌에 처할지도 모르지요. 경찰에서 마블리님을 만났다면 괜히 한 대 맞고 "슬퍼?"라는 대사를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저런 주장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법에 위반되는지 몰랐어요', '그런 법이 있었나요?', '처벌받을 일인지 몰랐어요.'라는 법률의 부지를 주장하는 말이 법률가들에게는 “정말 몰랐을까?” 혹은  “단골 변명 중 하나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듭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건에서 이런 주장은 신중한 게 좋겠지요.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저지르는 범죄를 보면 이걸 단지 변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범죄수법은 날로 다양하고 세밀해집니다.


대출을 받게 해준다면서 유심칩을 팔게 하고 통장과 카드를 제공하게 만들지요. 혹은 아르바이트라고 하면서 보이스피싱의 전달책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 경험이 없는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들을 생각해보면,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이 많지요. 대출도 한 번 받아본 적 없고 세상에 쉽게 돈 버는 길은 없다는 걸 잘 모르는 이 친구들이, 이런 행위들이 범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걸 알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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