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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Jul 29. 2023

사형제는 아직 합헌입니다만

최근에도 잔혹한 살인 사건이 많이 있었지요? 정유정 살인사건이나 신림동 묻지 마 흉기 살인사건이 최근에 가장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잔혹한 범죄에 관한 신문 기사의 댓글을 보다 보면, "사형시켜라"라는 말이 정말 많습니다. 물론 강하게 처벌하라는 표현을 강조해서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라는 의견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사형에 관해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국제 앰네스티에서 사형 집행 중단을 권고하고, 우리나라는 십수 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가 되었다고 하지요. 다만,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라는 말이 사형을 폐지하는 관습법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에 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성문법 국가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가 되었다는 말은 국가의 정책이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정책이 법을 사문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헌법에는 "형벌의 하나로 사형을 둘 수 있다."와 같은 명시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헌법에는 엄연히 사형이 합법적인 형벌 중 하나임을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한 위헌성 심사에서 위 헌법 규정을 들어 사형제의 헌법적 근거로 보았습니다.


헌법 제110조 ①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하여 특별법원으로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
②군사법원의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관할한다.
③군사법원의 조직ㆍ권한 및 재판관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
④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ㆍ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ㆍ초소ㆍ유독음식물공급ㆍ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사형제에 대한 합헌 결정(2008헌가23)에서 재판관 9명 중 3명은 위헌, 1명은 일부 위헌, 나머지 5명은 합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되었어요. 이후에도 명시적으로 사형제를 위헌이라 선언한 결정은 없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제도가 위헌이라고 할 정도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판단할 때에 "비례의 원칙"이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비례의 원칙은 다시 "①목적의 정당성, ②수단의 적합성, ③피해의 최소성, ④법익의 균형성"이라는 네 가지 세부 기준으로 나뉩니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이 네 가지 세부 기준이 모두 충족되고,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사형수의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1) 사형은 일반국민에 대한 심리적 위하를 통하여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며 극악한 범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를 통하여 정의를 실현하고, 당해 범죄인의 재범 가능성을 영구히 차단함으로써 사회를 방어하려는 것으로 그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은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다.

(2) 사형은 무기징역형이나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보다도 범죄자에 대한 법익침해의 정도가 큰 형벌로서, 인간의 생존본능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까지 고려하면, 무기징역형 등 자유형보다 더 큰 위하력을 발휘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범죄억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극악한 범죄의 경우에는 무기징역형 등 자유형의 선고만으로는 범죄자의 책임에 미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가족 및 일반국민의 정의관념에도 부합하지 못하며, 입법목적의 달성에 있어서 사형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사형보다 범죄자에 대한 법익침해 정도가 작은 다른 형벌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사형제도가 침해최소성원칙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다.

(3) 사형제도에 의하여 달성되는 범죄예방을 통한 무고한 일반국민의 생명 보호 등 중대한 공익의 보호와 정의의 실현 및 사회방위라는 공익은 사형제도로 발생하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권이라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인명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등의 극악한 범죄에 대하여 한정적으로 부과되는 사형이 그 범죄의 잔혹함에 비하여 과도한 형벌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사형제도는 법익균형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헌법재판소 2010. 2. 25. 선고 2008헌가23 전원재판부

 

저는 형사재판과 형벌제도는 문명의 극치를 보여주는 제도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형사재판 제도가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왕이나 군주, 종교지도자의 뜻대로 함부로 자유를 빼앗기지 않습니다. 거리의 선전선동에 따라 죄가 아닌 것이 죄가 되거나 형벌과 형량이 좌우되지도 않습니다. 미리 국가적 합의를 통해 정해둔 법과 재판제도에 따라 죄를 정하고 형벌을 부과하는 제도가 형사재판과 형벌제도이지요. 재산이나 자유, 생명을 빼앗은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행위의 무게만큼 저울을 달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가 형사재판과 형벌제도입니다.


사형제 위헌 의견을 낸 일부 재판관의 의견에는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법익침해에 대한 응보에 불과" 하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불과”하다는 표현입니다.


응보에 불과한 것이 왜 문제인가요?
응보라는 가치를 지나치게 폄훼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과거 어느 때처럼 개인이 사적 보복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가 사전에 모든 국민에게 공표한 법과 제도에 따라 국가가 개인을 대신하여 그의 행위에 대응되는 만큼의 처벌을 부과하는 제도가 응보입니다. 이 얼마나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인지요? 이 재판관님은 단지 그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종교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싶으셨을까요?


또 다른 재판관님의 의견에는, "살인자를 사형시킨다 하여 피살자의 생명이 보호되거나 구원되지 아니하므로" 사형제는 위헌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사형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피살자의 생명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사형시키는 것 말고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 피살자의 생명에 대한 보상을 달리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요?
감옥에서 평생 살게 하는 것이나 손해배상액으로 보상하는 것이
생명을 빼앗은 데 대한 적절하고 합리적인 보상일까요?



징역형이나 자격정지형을 부과하는 다른 형벌의 종류도 이미 입은 피해를 돌이킬 수 있기 때문에 부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기는 돈을 떼었을 뿐인데, 돈을 돌려주어도 실형이 선고될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돌이켰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가네요. 그렇다면 사기죄로 왜 감옥에 가겠습니까?


범죄는 갈수록 잔혹해지고, 사회적 억압과 분노는 아무런 관련 없는 개인의 생명을 향해 무분별하게 표출됩니다.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 개인의 생명 침해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현행법에는 엄연히 사형에 관한 법적 근거가 존재합니다.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더라도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정치범에 대한 사형 집행의 역사와 오판의 가능성은 정치와 형사재판제도의 문제일 뿐, 사형제 자체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사형을 선고하는 경우 훨씬 엄격하고 신중한 판단을 위해 4심, 5심제를 해서라도 사형제를 유지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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