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적이 드문드문한 자전거길에서 자전거를 타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남자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참고로 저는 여자)
지금 생각하니 특별한 이유는 없었을 것 같지만 눈빛이 어딘가 게슴츠레 하다고 순간적으로 느꼈습니다.
얼마 전 끔찍한 사건을 겪은 신림동 등산로 강간살인 사건의 피해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전거길 위에서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다 엉뚱쌩뚱한(?) 생각을 한 번 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의 타이틀을 받고 있지. 하지만 대한민국에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는 여전히 있지.
다시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사형제는 여전히 합헌이고, 합법적이고,
형법과 형사소송법에는 여전히 형벌의 종류의 하나로 사형을 규정하고 있고,
사형의 집행권자와 집행 절차에 관해 여전히 규정하고 있어.
그렇다면 국가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는 행위가 위헌 또는 위법이 아닐까?
그게 위헌 또는 위법이라면 국가를 향해서 이행하라는 청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 입구컷일 수도 있겠어. 청구인적격의 허들을 넘을 수 있을까?
사형수로 인해서 사망한 사람은 청구인이 될까?
그 사람은 죽었으니 그 유족이 사망한 사람의 권한을 대리해서 청구인이 될 수 있을까?
엉뚱한 생각이 법적으로 구현 가능한지 생각해보는 게 제 취미라면 취미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우실지 모르지만^^;;
우리 법상 국가가 무언가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고 있는 행위에 대해 그러한 부작위는 위헌 또는 위법임을 확인해달라는 청구가 가능합니다. 이를 일반 법원에 하는 것은 부작위위법확인, 헌법재판소에 하는 것은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이라 합니다.
우선 두 단계로 나눠서 따져야겠는데, 사실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1. 국가가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가
2. 국가가 사형을 집행할 의무가 있는가
형법에는 여전히 사형은 형의 종류의 하나이며, 교수형에 의해 사형을 집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일단은 집행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형법
제41조(형의 종류) 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사형
2. 징역
3. 금고
4. 자격상실
5. 자격정지
6. 벌금
7. 구류
8. 과료
9. 몰수
제66조(사형) 사형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絞首)하여 집행한다.
사형집행에도 시효가 있네요.
사형을 선고받고도 집행하지 않은 상태이면, 이제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는 걸까요?
형법
제78조(형의 시효의 기간) 시효는 형을 선고하는 재판이 확정된 후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고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기간이 지나면 완성된다.
1. 사형: 30년
2. 무기의 징역 또는 금고: 20년
3.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 15년
4.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년 이상의 자격정지: 10년
5. 3년 미만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상의 자격정지: 7년
6. 5년 미만의 자격정지, 벌금, 몰수 또는 추징: 5년
7. 구류 또는 과료: 1년
제80조(시효의 중단) 시효는 사형, 징역, 금고와 구류에 있어서는 수형자를 체포함으로, 벌금, 과료, 몰수와 추징에 있어서는 강제처분을 개시함으로 인하여 중단된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이어서 시효의 중단 규정이 있지요? 사형수가 교도소에서 수형 중인 경우에는 이 30년이라는 시효가 중단됩니다. 이 규정을 보고 사형을 선고받고 30년이 지난 사형수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도 있는 것 같지만, 30년 시효 규정은 사형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도주 중인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어요.
'어휴. 도망도 30년이나 다녔으면, 그만 놔준다.' 뭐 이런 겁니다. 그러니 적어도 교도소에 수형 중인 사형수에 대해서는 집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현재 수형 중인 사형수에 대해 국가가 사형을 집행할 수는 있는 상황인 겁니다.
그럼 국가에 사형을 집행할 의무가 있을까요? 사형 집행권자와 사형집행 절차를 살펴보아야겠어요.
형사소송법
제463조(사형의 집행) 사형은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의하여 집행한다.
제465조(사형집행명령의 시기) ①사형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
②상소권회복의 청구, 재심의 청구 또는 비상상고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그 절차가 종료할 때까지의 기간은 전항의 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제466조(사형집행의 기간) 법무부장관이 사형의 집행을 명한 때에는 5일 이내에 집행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상 사형은 법무부장관의 명령이 있어야만 집행할 수 있네요. 여기서 국가를 대신하는 것이 법무부장관입니다. 국가에서 그 업무를 할 직책을 정해둔 것이지요.
그리고 법무부장관은 사형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사형집행명령을 하여야 합니다.
형사소송법상 법무부장관에게는 사형집행을 명령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법무부장관이 사형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사형집행명령을 하지 않았다면 위법한 공무집행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 결론은 났습니다.
1. 우리나라는 사형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
2. 우리나라는 사형을 집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형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되었음에도 법무부장관이 사형집행명령을 내리지 않고, 사형수를 교도소에 수형만 시키고 있는 것은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위헌 또는 위법한 부작위이며, 사형미집행이라는 부작위위법확인청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론상! (실컷 복잡한 법 타고 내려왔는데 결론이 너무 허망한가요?)
이렇게 말씀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형에 관해서가 아니라도 국가에 대해 국가의 부작위가 위헌 또는 위법이므로 이행하라는 청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안타깝게 돌아가신 이태원 참사 사건에서도 보셨을 겁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심판에서 국민을 구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구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행정부작위를 주장했었지요. 하지만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사실관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요.
2017년에 사형 미집행 위헌 확인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각하한 사건(헌법재판소 2017. 7. 25. 선고 2017헌마753 결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교도소에 수용 중인 사형제와 무관한 누군가가 사형수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는 행정부작위에 대해 위헌 청구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 수용 중인 사람과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각하되었어요. 구체적인 내용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각하인데, 헌법재판소는 자기관련성이 없는 청구는 각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사형수에 의해 살해된 사람의 유가족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제 마음같으면 인정해주고 싶지만, 현재의 헌법재판소 판단대로라면 여전히 자기관련성을 부정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사형수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는 사형의 집행에 관하여 사형수에 의해 살해된 사람 혹은 그 유가족도 직접적인 자기관련성은 없다고 볼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사실 특정한 누군가의 생명권이라는 것이, 생명권을 침해당하는 당사자에게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직접적 자기관련성은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냥 재미있는 잡생각 정도로 생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