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제 : 성희롱인지 아닌지가 상대방의 성적 굴욕감(성적 불쾌감)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성희롱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어 성희롱은 판단하기 어렵다.
소전제 : 게임의 룰은 가해자에게 현저히 불리하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두텁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결론 : 성에 관한 내 행위준칙은 보수적일수록 나에게 유리하다.
우리는 내면에 각자의 행위준칙을 정해두고 살고 있다. 나는 딱히 정해둔 거 없는데? 하는 사람 역시 정해두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할 뿐. 가치관과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명확한 행위준칙을 가진 사람과 오랜 습관이나 관성,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무의식적 행위준칙을 가진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떤 방향의 행위준칙을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운 순간은 있습니다. 삶의 모든 선택들에 대한 답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복잡한 삶의 선택들 앞에 매번 고민하지 않으려면, 일정한 행위준칙을 정해두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얼마를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가요? 미리 정해두면 좋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연락하는 친구에게는 20만 원, 직장 동료에게는 5만 원, 일 년 가야 잘 연락 안 하는 사람에게는 무의. (너무 인색한가?) 고민할 일이 생길 때마다 고민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게다가 너무 피곤한 일이지요.
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상황이지요. 나 스스로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을 정했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인식시킵니다. 성희롱은 특히 매우 일상적이고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상대방에게 성적 굴육감을 안길 목적으로 지극히 의도된 성희롱은 제외하지요. 그들은 교육의 효과가 적어서 그냥 한 번 처벌받는 게 낫습니다.)
'여기까지는 선이야, 넘지 마. 넘으면 너 죽어.'
나 스스로에게 선을 인식시키고, 평소에 꾸준히 연습합니다.
상대방에게 성적 굴육감을 주는 행위는 옳지 못하므로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 정도는 이런 의미에서 소용없습니다. 모든 규칙은 98% 준수하는 것보다는 100% 준수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98%만 준수하는 것이 쉬울 텐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규칙을 준수한다는 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그 2%의 여지가 사람을 아주 곤혹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음주운전도 비슷합니다.
'맥주 한 모금만 마셨으니 괜찮겠지? 맥주 한 모금으로 혈중알코올농도가 나오지는 않겠지? 에이, 설마.'
그 설마로 많은 사람들이 음주운전에 적발됩니다. 물론 적발되지 않은 확률이 여전히 있습니다. 음주운전 처벌기준이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개정되었으므로 더 적발될 확률은 높습니다. 그렇다면 그 2%의 모호한 영역에 인생을 건다는 뜻입니다. 바보라고 봐도 되지 않는가요?
하지만 성희롱인지 아닌지 모호합니다. 우선 어디까지 성희롱이고 어디까지 성희롱 아닌지를 알아야 행위준칙을 정할 수 있잖아요? 내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의 성적 굴육감을 유발하는 것일지 아닐지 고민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 그중 하나입니다.
“오늘따라 화사하시네요.”
직장 동료가 오늘따라 화사하게 차려입어서 다른 날보다 정말 근사합니다. 그 모습이 근사하다고 꼭 칭찬 한 마디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정말 성희롱 고의 없었습니다. 그 정도 칭찬은 해도 되는 사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료 표정이 안 좋습니다. 기분 나빠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쩐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꾸라고는 “아, 예예.” 이게 다입니다.
단지 칭찬이 어색해서였을까요? 성희롱이라고 느낀 걸까요? 갑자기 심란합니다. 이미 뱉은 말인 데다 내 입장에서는 칭찬이라, 사과하는 것도 애매합니다.
사람은 다양한 문화적, 환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긍정적인 가치 판단이라 해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으니까요. 상대방 입장에서도 칭찬일 거라 단정할 수 없어요.
개구리 왕눈이라는 오래전 만화에 피리 부는 개구리 왕눈이가 사랑하는 아로미라는 여자 개구리가 있습니다. 귀엽고 러블리한 캐릭터입니다. 어릴 적 남학생이 저에게 아로미라고 부르고 다녔습니다. 저는 그 별명이 너무 싫었어요. 제 눈이 크고 앞으로 돌출된 걸 놀린다고 진심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남자애도 정말 싫었지요. 하지만 조금 커서 그 애에게 진실을 들어 알게 됐습니다. 저를 좋아해서 정말 예쁜 아로미같다고 생각해한 말이었다고.
실제로 최근에는 외모에 대한 평가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 2030과 4050 세대 간 차이 이기도 합니다. 특히 동성 간 스킨십에 대해서도 세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4050 세대는 동성 간 스킨십에 대하 좀 더 허용적이지요.
그러니 성희롱의 기준은 가장 보수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유리합니다. 2%의 허용되는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는 작전입니다. 예를 들어, 외모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혹은 다른 사람의 신체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 등의 기준을 두는 겁니다.
그렇게 각박하게 살아야 하느냐, 말씀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네요. 저는 유불리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