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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Jan 01. 2024

매체환경에 대한 소고

작가노트

    인간의 의식은 끊임없이 그들의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한다. 후설이 말했듯이 인간의 의식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 의식이 무엇인가를 향해서, 우리가 그 대상을 지각하게 되면 우리의 지성과 감성은 그 대상 이면에 숨은 의미들을 빠르게 읽어낸다. 19C 양식의 실내장식은 근대화 시기의 역동으로, 강렬한 붉은색은 벽지는 정렬의 감정으로, 나무 마감재는 자연의 포근함을 향해 우리의 의식을 이끌어간다. 그렇게 우리의 의식은 대상의 표면을 관통하여 더 먼 여정을 떠난다. 이것이 내가 공간디자인을 전공하며 관심을 쏟아 온 현상이다.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의식이 공간의 각 요소와 관계 맺는 현상을 디자인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들이 몸담은 환경을 읽어내는 능동적 탐색자이며, 그 대상이 되는 공간의 여러 요소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이자 매체이다.  


    이러한 인간과 공간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나의 기호현상학적 관심은 한국의 복잡한 현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고, 군 복무를 마치기까지 나의 역사관은, 많은 한국의 남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편의로 형성되었다. 한국의 역사 교육은 일본과 북한, 때로는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에 대한 정치적 역학을 바탕으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계승하고자 하는 복잡한 장치였다. 복학 후 접한 한 수업에서 나의 역사관에 담긴 정치적 의도와 그 편협함을 깨달았을 때, 나는 한국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여러 이데올로기적 함의에 골몰하였다. 그리고 곧 나의 관심은 기호학(롤랑 바르트)으로 이어졌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이루는 모든 것들에 숨겨진 힘과 그 힘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이끌어가는 그 매체적 성격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나에게 세상은 매체를 통해 권력이 작용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되었다. 나의 전공인 디자인은 자본이라는 힘의 의도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감각적이고 정치적인 수사학으로 이해되었다. 그 때문에 나의 디자인 연구는 ‘어떠한 감각적 유행을 좇아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들의 의식을 감각적 자극을 통해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시장에서 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교묘하게 ‘디자인’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 이면에 숨겨진 힘의 작용을 포착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진로로 전시디자인을 택하며, 나는 전시가 우리 사회의 매체적 성격을 단편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전시관은 다양한 매체들이 공간에 결합한 ‘복합매체환경’이다. 그 때문에 전시를 방문한 관람객의 의식은 그 어느 공간을 방문했을 때보다도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5년간의 전시 실무를 통해 나는 매체가 어떻게 메시지를 편집하며 사람들의 의식을 움직이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나의 관심은 점차 확장되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도시환경에 나의 관점을 적용하는 데로 나아갔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내가 전시디자인에 뛰어든 2018년으로부터 근 5년간 우리의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매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범람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눈에 이것들은 통제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범람으로 보였다. 이에 발 맞춰 이데올로기 역시 범람하였다. 내 고등학교 시절, 국가가 주도하여 통제하던 매체는 이제 누구도 함부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이제 나의 관심사는 이 범람하는 매체 환경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은 더 범람하는 매체와 점점 더 밀접히 결합되어 갈 것이다. 초보적 형태로 구축된 유비쿼터스 환경이나 건축적 규모로 도시과 결합하는 초 스케일 영상들은 이러한 결합의 과도기적 형태를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인화된 초 매체, 즉 스마트폰과 같이 개인의 초 연결과 제한 없는 매체의 생산, 유통, 영위를 가능하게 하는 장비들은 개인의 손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보다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사람들은 매체로 가득 찬 공간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게 될 것이며, 어쩌면 이 매체들은 공기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는 채로 겹친 차원에 존재할 수도 있다. 곧 한 공간 안의 매체들은 이제 '매체농도’와 같은 화학적 단위를 기준으로 가늠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개인들의 의식은 이제 더 먼 곳까지 더 빠르고 쉽게 도달하며, 필요한 정보를 더 쉽게 획득하여 돌아올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고 현실에 구현해 나가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렇게 범람하는 매체환경이 지닌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함의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실존을 위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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