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내가 우울한 이유를 부모 탓으로 돌렸다.
가난했던 집
늘 싸우던 부모
화목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것,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부모를 원망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전부 그곳에 있는 것처럼.
하지만 부모와 거리를 두고 혼자 살아가면서 조금씩 다른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어쩌면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부모도 그중 하나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부모는 늘 자신들의 삶을 버거워했고,
아이보다 자신이 먼저였던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들이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결핍 속에서 자라났다.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내가 가진 결핍이 그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무섭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받은 사랑의 부족함을
내 아이에게도 그대로 넘겨주게 되면 어떡할까..
나는 부모에게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면서 자랐고 그래서인지 부모를 온전히 사랑하지도 못했다.
가끔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만약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도 나처럼 되지 않을까.
그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멈추게 한다.
그렇게 부모 탓을 하며 살아왔던 내가
요즘은 가끔 다른 생각도 한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잘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 탓만 하면서 우울하던 시절을 보낼 필요는 없었는데..
나 자신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는데.
조금 더 나를 사랑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의 나는 자존감이 거의 없었다.
꿈이라는 건 나에게 사치처럼 느껴졌고
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돈에 집착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성인이 된 순간부터 결국 내 삶은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어쩔 수 없었다고 인정하고 그때부터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이제는 엄마의 삶도 조금 보인다.
엄마 또한 많은 희생 속에서 나를 낳고 키웠을 것이다. 엄마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 번 돈을 대부분 써야 했고 그래서 가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선택들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삶이 버거웠던 사람에게
완벽한 선택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너무 쉬운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엄마를 원망하기보다는
그저 이해하려고 한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과거의 원망에서 조금씩 벗어나려고 한다.
그 원망을 품고 사는 일이
결국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내려놓아 보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