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한편에서 씻던 날

by Osera

어릴 때 부모님이 크게 싸우던 날이 있었다. 집 안이 조용해진 뒤에도 엄마는 한참을 울고 있었다.

불을 꺼놓은 방 안에서 나는 가만히 서 있다가 엄마에게 말했다.


“노래 들으면 좀 괜찮을 거야.”
그 말이 위로가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내가 아는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말 하나를 꺼냈을 뿐이었다. 울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도 나는 그 슬픔을 제대로 이해할 만큼 어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꽤 거칠었다.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것 같다. 짜증이 많았고 반항적이었으며, 마음속에는 늘 화가 쌓여 있었다.


가끔은 엄마도 아빠도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어떤 날은 차라리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
왜 이렇게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할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는 제대로 된 욕실도 없었고,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아 가게 한편에서 몸을 씻어야 했다.


그 모든 것이 어린 나에게는 너무 창피했고, 그 삶 자체가 견디기 힘들 만큼 싫었다.


그래서 나는 늘 우울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착한 아이는 아니었다.


엄마를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네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에 쌓인 불만과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였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때 내가 너무 착한 아이였다면, 모든 걸 참고 엄마를 이해하려고만 했더라면,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엄마를 용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미숙했고 거칠었지만, 어쩌면 그때 충분히 반항하고, 미워하고, 화를 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그때 못 해준 것들을 조금씩 엄마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가끔은 여전히 짜증이 나고 이해되지 않는 순간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오래 참고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슬픔이 이제는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