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에 ‘저작권‘ 어린이 지나갑니다

by 이음

전방에 어린이 보호구역입니다. 제한속도를 준수하십시오.


살면서 한 번쯤, 혹은 자주 듣는 안내멘트입니다. 학교 근처를 지날 때 주로 듣습니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성숙한 어른들이 이를 보호해 주자는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가끔 바쁠 때는 규정속도에 근접하게 속도를 줄여 넘어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보다 현저히 낮게, 때때로 인도를 걷는 어르신보다 더 천천히 넘어갑니다.

이는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어른 누구나 그럴 겁니다.


이름은 틀을 만듭니다. 세상이 나를 칭할 때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만들 때도 쓰입니다. 저작권은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일까요?

저에게는 굉장히 딱딱한 이미지였습니다. 엄숙하고 강제적인 틀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작품을 궁리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글,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합니다.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귀 한 문장도, 지나가다 눈에 밟혀 찍어둔 사진 한 장도, 나만 보면 배시시 웃어주는 연인을 생각하며 쓴 글 한편도 제게는 너무 소중합니다.

꼭 아이 같습니다. 제 속에서 이런 감정이 나온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삭막하다고만 생각하고 보살피지 않던 제 마음속에도 한줄기 꽃이 자라남을, 더 자라날 수 있음을 깨닫곤 합니다.


자동차라는 거대한 기물이 아이를 덮칠까 조심하는 것처럼, 저작권이라는 이미지에 매몰되지 말고 우리들의 아이를 지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친구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배워 당연한 내용이 친구들에게는 아직 서툴러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나 학용품을 보고 친구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이는 너무 당연하고 좋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의 팔다리를 강제로 떼어가고 내장을 짓밟는데 당연한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맞아서 돌아온 아이를 가만히 두고 볼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날 터전을 어른인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남의 손이 아닌 우리들 각자의 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디 가서 맞지 않도록 튼튼한 무기를 쥐어주고 무술을 배워줘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같이 지켜주세요. 우리 아이가 존중받고 자라날 터전을 함께 닦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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