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는 자들에게 읍소

by 이음

세계 최초의 법은 무엇일까요? 정의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쩌면 ‘본인의 것을 지키기’ 였을지 모릅니다.

의식이 깨어나고 관계가 형성되고 문명이 지어지며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지금은 내부의 적이 위협을 가합니다.

그에 무너지지 않게 누구 하나 더 이득 보는 사람 없게 최소한의 판단기준으로 만들어진 게 법일 겁니다.

결국 잉여자원과 위험에서 동떨어졌다는 여유는 우리를 조금 더 생각하게 합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추구. 도덕이나 배려, 존중 따위가 생겨난 계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작권은 왜 지켜져야 하는 것일까요?

좀 더 직접적으로 살펴보면 더 좋아지기 위함입니다.

침해당한다면 누가 또 만들고 싶겠습니까?

어차피 뺏길 거 차라리 공개 안 하고 말겠습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힘을 길러 뺏길 바에 공격하기도 할 겁니다. 그럼 또다시 분열이 생기고 기껏 뺏긴 평화는 불길함으로 물들게 될 겁니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비참한, 살기 위해 하나하나 건져내는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고 있다면 격리가 필요할 겁니다.

이 사회를 이루고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인 존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위의, 기초적이고 원초적인 감전의 달콤함에 속아 어렵게 세운 탑을 부수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그렇지 않길 바라며 피를 흘리고 뼈를 갈아 쌓아 올리신 부모님과 조상세대분들을 봐서라도, 누릴 거 다 누린 우리는 뻔뻔하게 그래선 안됩니다.


단순하게 법이나 규칙의 이름이 아닙니다. 존중의 또 다른 표현이자 사회라는 기물의 중요한 부품입니다. 그토록 누리고자 하기에 목숨 걸고 싸워오신 분들의 한이자 우리 세대를 위해 고이 감싸 넘겨준 프로메테우스의 불입니다.


지금껏 누려오신 여러분, 저는 부끄럽습니다. 존중을 명문화함도 부끄럽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 자들과도 같은 것을 누린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공경, 숭배.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정작 그들의 진정한 뜻은 모른 체합니까. 알면서도 그럴 것입니다. 이젠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압니다. 그렇기에 옷을 입습니다. 그 옷을 뺏지 마십시오, 벗기지 마십시오. 우리도 물려주어야 합니다. 돌려주어야 합니다. 자유라는 이름에 가려져 안보인 존중을 이젠 마주해야 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방에 ‘저작권‘ 어린이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