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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피지에서 보낸 6개월, WHO 인턴십 기록

사이클론과 정보관리, 그리고 진로 설정

by 밤나무
학부 졸업을 앞두고, 나는 마지막 학기보다 더 설레는 계획을 세웠다. 환경부가 주관하는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에 지원해 합격한 것이다. 한 달간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면 국내외 국제기구 인턴십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나는 HQ보다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지역 사무소를 찾았고, 전공인 환경공학과 관련 있는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소 환경보건팀을 선택했다. 그 사무소의 위치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였다.


국제환경전문가양성과정에서 WHO로

국제환경전문가양성과정에서는 이전 기수들의 인턴십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었다. WHO 역시 이 과정과 네트워크가 형성된 국제기구 중 하나였고, 덕분에 지원 절차가 비교적 수월했다. CV와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별도의 면접은 없었다. 원칙적으로 국제기구 인턴은 석사 학위 이상이 지원 자격이지만, 이 과정과 연계된 기구의 경우 학부 졸업생도 예외적으로 받아주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 WHO 피지 사무소에는 한국인 박사가 세 분 계셨고, 한국인에 대한 평판도 좋아 지원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피지 사무소의 첫인상

2015년 11월 말, 피지 수도 수바에 도착했다. 수바는 남태평양 섬나라 중 가장 큰 도시로, 여러 국제기구의 지역사무소가 모여 있었다. 연말이라 사무소는 비교적 한산했고, 직원들도 휴가를 가는 경우가 많았다. 피지 행정직원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팀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환경보건팀은 한국인 팀장 1명, 피지 팀원 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무실에서는 피지 전통문양이 있는 밝은 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많았다.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흥미로웠다.


사무소에서는 회의가 잦았다. 화상회의, 컨퍼런스콜, 대면 회의가 일상적이었다.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미국의 전문가와 컨퍼런스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매주 직원 전체 회의가 있었고,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시켜 먹거나 근처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식사했다.



사이클론 Winston의 발생과 재난 대응

인턴 초기 업무는 남태평양 도서국가들의 기후 대응 관련 연구와 조사였다. 하지만 근무 중 카테고리 5급 열대사이클론 Winston이 발생했다. 피지 수도 수바도 피해를 입었고, 내가 머물던 집도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복구까지 약 2주가 걸렸고, 그동안은 조리가 필요 없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시내에서 식사했다. 초기에는 사무소까지 가는 도로가 막혀 집에만 머물러야 했다. 공식 사망자만 44명에 달하는 큰 피해였다.


피지 정부와 WHO는 보건부와 협력해 의료시설과 대피소의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복구에 나섰다. 나는 재난 대응 과정에서 정보관리를 맡았다. 재난 시에는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기관 간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정확한 정보 공유가 필수다. 나는 정보 공유용 툴을 만들고, 각 기관에서 받은 자료를 업데이트해 파트너들과 공유했다.



정보관리와 협업의 도전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주간 재난 대응 상황을 정리한 Weekly Bulletin 작성이었다. 이를 위해 파트너 기관들로부터 업데이트 자료를 받아야 했는데, 마감 기한 내에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구글 폼을 만들어 간소화했고, 기한이 지나면 직접 연락하거나 찾아가 자료를 확보했다. 업무가 몰리면서 야근을 해야했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정보관리 과정에서 드롭박스, 구글 폼 등을 시도했지만 일부 직원들은 툴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피지 보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보관리 교육을 진행했다. UNICEF 등 다른 국제기구와의 협업이 많았고, 이를 통해 이메일, 전화, 회의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키웠다.



전문성과 한계, 그리고 깨달음

WHO 인턴십은 내게 큰 조직에서 일하는 경험과 국제 협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인턴 신분임에도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스스로도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의사결정 과정은 느렸고, 회의가 많았다. 기대했던 현장 업무보다는 정보관리 비중이 훨씬 컸으며, WHO의 역할은 결국 피지 정부를 지원하는 컨설팅에 그치는 점이 아쉬부었다.


개인적으로는 팀 중심의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도 있었다. 나는 혼자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었다. 중요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상사의 지시에 맞춰야 했고, 이로 인한 압박감이 있었다.



진로 전환의 계기

6개월간의 인턴십은 보람 있었지만 업무 강도가 높아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귀국 직전, 같은 사무소에서 일하던 한국인 박사님이 내 진로를 물었고, 중앙부처 사무관으로 일하는 길을 권유했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것과 유사하여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직접 정책을 기획하고 제도를 추진하는 역할이 나와 잘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지만, 도전과 성취를 즐기는 내 성향에도 맞았다.


그렇게 WHO에서의 경험은 내 경력을 국제기구에서 공직으로 옮기는 전환점이 되었다.


피지의 흔한 노을
현장답사 중에

[시리즈] 한 이공계생의 진로 탐색기: 이공계에서 행정고시까지

1부 — 경쟁 속에서 자란 이공계생의 학창 시절

운동을 통해 길러진 승부욕은 대치동 학원가를 거쳐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이어졌다. 과학고와 기숙사 생활, 그리고 끝없는 경쟁 속에서 느낀 압박과 회의감. 이공계로 진학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겪은 성장과 한계를 이야기한다.


2부 — 법과 무관했던 내가 공익 변호사를 꿈꾸게 된 6개월

대학 시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보낸 인턴 생활. 성소수자, 난민, 취약노동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공익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비좁고 낡았지만 열기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배운 것들을 기록했다.


3부 — 로스쿨 대신 행정고시를 택한 이유

공익 변호사의 꿈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장벽과 경제적 부담 속에서 다른 길을 모색했다.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지만 WHO 인턴 경험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결국 행정고시를 도전하게 된 과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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