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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로스쿨 대신 행정고시를 택한 이유

공익 변호사의 꿈에서 행정사무관까지, 나의 선택 경로

by 밤나무
인턴이 끝난 뒤, 내 진로의 방향은 법조계에서 행정 분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공익 변호사에 대한 동경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인턴을 시작할 당시에도, 로스쿨 진학은 마음 한 켠에 있었다. 인턴을 마친 뒤에는 그 마음이 더 커졌다. 전업 공익 변호사로 일한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학에서 3학기 연속 법학 관련 교양 강의를 수강했다. 법 적성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름 재미있게 수강했었고 성적도 잘 받았다. 미국 변호사이던 담당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했고, 교수님은 내 이공계 전공을 살려 지식재산권이나 특허 분야 변호사로 진로를 잡는 것을 추천했다. 로스쿨 대비 학원 상담도 받아봤는데, 학점과 리트 점수가 합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학점은 좋지 않았고, ‘스카이 로스쿨’ 진학은 사실상 어려웠다. 리트를 매우 잘 봐야 인서울 로스쿨에 지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실적인 장벽들

그 시기 나는 최상위권 로스쿨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성적에 맞는 학교에 진학해도 변호사로서의 길을 걷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빅펌을 지망하지 않는 한, 출신 학교의 영향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벽은 돈이었다. 나는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당시 로스쿨 학비는 사법고시와 비교해 ‘부자들만 갈 수 있는 학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고, 나는 대학도 전액 장학금으로 다녔기에 졸업 후에도 부모님께 학비를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학자금 대출을 고려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엔 그 선택지를 깊이 검토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공익 변호사의 처우 문제였다. 전업 공익 변호사는 보수가 낮고, 우리나라는 제도적 지원이 부족하다. 금전적인 어려움 속에서 그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다른 길을 모색하다

로스쿨 진학을 포기했을 때, 특별히 큰 아쉬움은 없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고 싶다는 방향성은 유지됐다.


외교관의 책을 읽고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다. 한 학기 휴학을 하면서 외교관후보자선발시험 대비 강의를 듣고,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해 단기간에 열심히 공부해서 DELF B2를 취득했다. 외교관후보자선발시험 1차에도 응시했지만 점수가 좋지 않아 현실의 벽을 느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조금 더 현실적인 길을 찾아야 했다.



WHO 인턴 경험과 전환점

취업과 인턴 공고를 보던 중, 환경부 주관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에 합격했다. 한 달간 교육을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해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소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하게 됐다. 항공료와 체재비를 지원받으며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경험은 도전적이고 흥미로웠다.


인턴이 끝날 무렵, 같은 사무소의 한국인 박사님이 내 진로를 물으셨다. 나는 인턴으로 성실하게 일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박사님은 행정고시를 합격해 중앙부처 사무관이 되는 길을 권유하셨다. 국제기구와 중앙부처 모두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며 배울 점이 많고,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행정고시로 방향을 바꾸다

그 조언은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다. 내 커리어와 행정고시는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존경하는 분이 진지하게 권해주시니 나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행정고시 준비는 로스쿨이나 대학원 진학보다 비용 부담이 적었고, 국제기구에서의 경험이 나를 많이 성장시킨 터라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졌다.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시험이었지만, 나는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을 즐기는 성향이 있었다. 취업하는 시기에 다시 수험생이 되어야 했지만, 부모님께 2년만 도전하겠다고 약속하고 고시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 선택이 나를 행정사무관으로 이끌었고, 바라던 공직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변호사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시리즈] 한 이공계생의 진로 탐색기: 이공계에서 행정고시까지

1부 — 경쟁 속에서 자란 이공계생의 학창 시절

운동을 통해 길러진 승부욕은 대치동 학원가를 거쳐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이어졌다. 과학고와 기숙사 생활, 그리고 끝없는 경쟁 속에서 느낀 압박과 회의감. 이공계로 진학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겪은 성장과 한계를 이야기한다.


2부 — 법과 무관했던 내가 공익 변호사를 꿈꾸게 된 6개월

대학 시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보낸 인턴 생활. 성소수자, 난민, 취약노동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공익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비좁고 낡았지만 열기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배운 것들을 기록했다.


3부 — 로스쿨 대신 행정고시를 택한 이유

공익 변호사의 꿈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장벽과 경제적 부담 속에서 다른 길을 모색했다.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지만 WHO 인턴 경험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결국 행정고시를 도전하게 된 과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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