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만 좋아하던 내가 대치동을 거쳐 입시 경쟁에 오르기까지
운동으로 길러진 승부욕은 대치동 학원가를 거쳐 입시 경쟁의 사다리로 이어졌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초반까지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태권도 3단, 특공무술 1단을 취득했고, 학교에서는 육상 대표로 높이뛰기 서울시 1등을 한 적도 있다.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승부욕과 인내심이 길러졌고, 이 성향은 나중에 공부로 방향을 바꿨을 때 큰 자산이 됐다.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 과학고 진학을 권유했다. 집에서는 처음엔 부담스러워했다. 강남권 부모들처럼 정보력도, 준비도 부족했고, 과연 잘 지원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으셨다. 그래도 학비가 무료라는 점, 그리고 내가 강하게 원한다는 점 때문에 결국 진학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중학교 1학년까지 나는 태권도장에 다니는 것 이외에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과학고 진학이라는 목표가 생긴 2학년부터는 동네에서 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과학고 입시 준비는 고등학교와 일부 대학 과정까지 앞당겨 배우는 ‘선행지옥’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대치동 학원까지 다녔고, 아버지가 차에서 도시락을 먹이며 학원에 데려다주셨다. 과학고 대비반 수업은 빠른 진도와 높은 난이도로 유명했고, 서울대 화학과 출신 강사들이 대학 일반화학, 유기화학, 무기화학까지 가르쳤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 욕심이 크지 않았지만, 학원을 다니고 환경이 바뀌자 욕심이 생겼다. 잠을 줄여가며 준비했고, 결국 원하던 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과학고는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만 모인 곳이었다. 고등학교 2년 동안은 고등 진도뿐 아니라 대학 과목 일부까지 배웠다. 수업 난이도와 끝없는 시험 준비는 벅찼다. 기숙사 학교였고 규율이 엄격했다. 휴대폰은 방과 후부터 야간 자율학습 시간 전까지 잠깐 사용 가능했고, 아침 점호부터 야간 점호까지 빼곡한 일정이 이어졌다.
규율 위반 시 벌칙도 엄격했다. 야간 점호 이후 후배 기숙사에 갔다가 보름간 기숙사 퇴사 조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기간에는 학교 근처 좁은 고시원에서 통학했다. 피곤해서 자율학습 시간에 엎드려 자면 선생님이 깨웠고, 학생들은 덜 중요한 과목 시간에 잠을 보충하곤 했다.
가장 힘든 건 높은 과목 난이도와 치열한 경쟁 압박이 동시에 몰려왔다는 점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성적 상위 50명 이름이 커다란 자보에 공개됐다. 이름을 찾은 학생은 기뻐했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실망했다. 나는 한 번도 거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학교 분위기는 철저한 성과주의였다. 국제올림피아드 수상이나 좋은 대학 입시 결과를 낸 학생이 교사의 관심을 받았다. 상위권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선행학습이 몸에 배어 있었고, 나는 입시에 뒤늦게 뛰어들은 탓인지 준비가 부족했다.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자 학업에 흥미를 잃었고, 문과로 전향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과학고 내신으로는 문과 상위 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주변 반대에 부딪혀, 결국 그 길은 가지 못했다.
과학고 2학년이 되면 대부분 대학에 수시 지원을 했다. 나도 여러 이공계 대학에 지원했고, 운 좋게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합격 소식은 기쁘고 후련했다. 무엇보다 지긋지긋했던 고등학교 생활을 조기졸업으로 1년 일찍 끝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대학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유에 대한 기대가 컸다.
대학에 진학한 뒤, 나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 곳에서 공익 변호사의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운동을 통해 길러진 승부욕은 대치동 학원가를 거쳐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이어졌다. 과학고와 기숙사 생활, 그리고 끝없는 경쟁 속에서 느낀 압박과 회의감. 이공계로 진학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겪은 성장과 한계를 이야기한다.
2부 — 법과 무관했던 내가 공익 변호사를 꿈꾸게 된 6개월
대학 시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보낸 인턴 생활. 성소수자, 난민, 취약노동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공익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비좁고 낡았지만 열기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배운 것들을 기록했다.
공익 변호사의 꿈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장벽과 경제적 부담 속에서 다른 길을 모색했다.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지만 WHO 인턴 경험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결국 행정고시를 도전하게 된 과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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