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컨설팅 회고: 고달프던 지난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
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전에 쓴 글들을 읽어봤는데, 어딘지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래 과거의 글조각을 읽어볼 때면, 그때의 날 것의 감정이 상기되곤 했는데, 지금 여기 올라와 있는 글들은 왠지 과하게 정돈되어 있다.
날 것 그대로 쓴 글을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가 발견하는 게 부끄러웠고, 그래서 이런 공개적인 플랫폼에 쓸 때는 2차, 3차로 걸러낸 생각만 적어냈다. 자의식 과잉이다.
아, 제목은 좀 어그로다. 프로젝트가 망하는 법은 아니고, 내가 개인으로서/팀원으로서 망하는 법 정도이다.
매거진명 “컨설팅 회고록”에 알맞게 지금 써 내려가고자 하는 것은, 최근 들어 가장 힘들었던 컨설팅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이다.
힘들다, 를 정의하기 위해 어떻게 힘들었냐부터 설명해 보자면, 일단 잠을 못 잤다. 하루 두 세시간으로 겨우 버틴 것 같은데, 잠을 못 자다 보니 생산성이 떨어지고, 하루는 더 길어지고, 잠은 더 못 자게 되었다.
나는 효율(& 잠) 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벼락치기와는 원체 담을 쌓고 살았다. 미리 계획해서 준비하면 데드라인 직전에 휘몰아칠 일이 없다. 그런데 회사 일이란 내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더라. 나는 계획해도 보고가 미뤄지고, 방향성이 바뀌고, 클라이언트의 새로운 요구가 얹어지면 계획은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나의 위기대처능력이 미흡한 걸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잠을 못 자고 또 혼란 속에 빠져있는 괴로움으로 인해 힘들었다.
왜 힘들었냐, 가 사실 제일 중요한 질문인데, 복합적인 이유인 것 같다.
1. 맥락이 안 읽혔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각 모듈의 목표라는 게 있는데 그 맥락 자체가 파악이 잘 안 됐다. 정확히는 맥락 자체라기보단, 맥락을 결정하는 그 의사결정권자들의 의중 파악이 어려웠다.
컨설팅을 잘한다, 의 주 요소 중 하나는 클라이언트가 “들어야 하는 말”과 “듣고 싶어 하는 말”의 적절한 저울질이다. 전자는 나의 분석과 문제 해결력으로서 결론 내릴 수 있다만, 후자는 컨설팅의 주축이 되는 여러 entity와의 투명하고 잦은 소통이 핵심이다.
본 프로젝트는 잦은 미팅을 동반했으나, 소통은 미흡했다. 의결권이 사방에 흩어져있어서 정작 제일 중요한 사람과의 논의는 늦어지거나, 사업적인 것 외 정치적 의중이 깔려있어 목적 파악이 어렵거나, 하는 소통의 난관이 다수 존재했다.
2. 단순 열일하는 것 외의 요소에 대해 낙관했다.
컨설팅은 그저 열심히 분석하고, 장표를 찍어냄으로써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맥락에 대한 얘기도 결국은 같은 말인데, 단순 일 외의 것들에 대한 민첩한 인지가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컨설팅에서도, 컨설팅에서는 특히 일 외의 것들의 중요도가 높다.
Presence 라고 하는 것, 컨설턴트로서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기저에 깔려있는 신뢰를 지칭한다. 좋은 presence를 가진 사람의 말이 조금 더 신뢰가 가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는 당연히 훨씬 더 수월하다. 본질을 흐리는 그저 트집잡기가 없고, 더 진취적인 프로젝트 진행이 가능하다.
힘들었던 이번 프로젝트는, 열심히 일함으로써 위의 요소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다. 클라이언트와 라포를 쌓기 위한 노력, 어려 보이지 않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나, 신뢰를 얻기 위한 다른 방법보다는, 일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주제 자체가 매우 복잡했다) 이에만 집중했다.
하여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힘에 부치는 프로젝트였다. 그래도 많이 배우긴 했다. 일적으로 무얼 배웠냐 하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확실히 “버티는 법”을 배웠다. 또 긍정적인 점은 위의 두 가지만 반대로 하더라도 꽤나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맥락 파악과 일 외적인 것에 대한 집중이 그저 내가 노력하면 되는 건 아니라는 건 문제지만.
컨설팅은 너무 어렵다. 나는 어느 정도 잘 알고 또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렵다. 방심할 때쯤이면 새로운 챌린지가 떨어지는 게 컨설턴트의 숙명과도 같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두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