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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VIN Jan 19. 2024

내가 보는 난이도가 높은 일러스트

mavin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생존하는 방법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듣고 자랐다. 그림도 분석으로 많이 그렸고 감정에 대해서 참 많이 무딘 사람이라 '오성아 그림에 감정을 잘 담아봐'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이래저래 분석하면서 그리다 보니 제일 어려웠던 그림들 몇 가지들이 있다. 이 몇 가지는 지금도 어려운데 꾸준히 공부 중에 있다.


커플일러스트

상당히 어렵다. 나에겐 1순위이지 않을까 싶다. 커플일러스트는 앞서 말한 스톡이미지들 중 스테디셀러에 포함된다. 먼저 커플들의 형태를 파악해야 한다. 커플들의 형태라고 말하니까 한 덩어리의 어떤 물건처럼 느껴지는데 커플들이 잘 취하는 모습을 말한다. 관찰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는 그림에서 '두사람 같이 있으면 커플이지 뭐'라고 단순하게 해석했었다. 그 생각을 바꿔준 계기가 있다. 1년 전 진짜 유명하신 작가님의 개인전을 간 적이 있다. 원래 커플일러스트로 유명하신 작가님이신데 그 작가님의 개인전에서 배울 수 있던 점은 커플 일러스트에서 괜히 1등이 아니라는 점. 그간 스케치하신 걸 봤는데 디지털 작업을 두고 따로 종이 위에 스케치를 하신다. 종이 위에 그려진 스케치는 그간의 공부한 흔적들이 있는데 캐릭터의 설정부터 포즈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커플을 잘 보여주기 위해선 사랑스러움이 있어야 하는데 사랑이라는 걸 어떤 포즈나 행위에서 느낄 수 있게끔 공부를 하신 듯하다. 실제 SNS에 업로드되는 그림들을 보면 어떠한 문안도 없이 커플이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잘 그리신다. 그래서 댓글을 보면 해외팬들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이 그림으로만 SNS에서 100만을 넘는 분은 많지 않을 듯싶다. 그림은 어느 정도 되면 왠만큼은 표현이 다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일정 수준을 넘으려면 그림에 좀 더 다른 걸 얹혀야 하는데 거기엔 분명히 다른 관찰력이 필요하다.


위에 그림은 내가 표현해 본 커플의 모습인데 그릴 때 '이제 막 연애한 지 1년도 안된 서로 죽고 못 사는 그런 커플의 모습을 그려보자'로 생각하고 그렸다. 상대방에게 서로 호감이 있다는 걸 적극 보여주는 모습에선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서로를 바라보는 게 아닌 등받이를 둘 다 떼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 남자는 발이 여자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점.(여성에게 적극적) 여자보다 남자의 시선이 위에 있다는 점.(여자의 한 곳보단 모습 전체를 바라보는) 뭐 이런 것들을 나는 찾아서 그려보려고 노력했다. 이게 위 그림에선 이 정도로 끝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느끼고 실행하는 사람의 그림에선 더 잘 느껴지는 듯하다.


자연풍경일러스트

학생 때부터 자연풍경은 나에게서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도시는 정해진 형태가 있다. 그리고 도시에서 자라고 살았으니 눈에 익숙해서 어느 정도 화려하게 그리는 법이나 비슷한 형태가 많아 잘 터득한 듯하다. 하지만 자연물들은 절대 같은 형태가 없다. 비슷한 형태도 없다. 다 다른데 그 다른 것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게 참 어렵다. 그래서 작업실을 힙한 동네인 서울의 연희동 연남동에 성수동 이런 곳에 안 두고 인천에 가장 한적하고 자연물을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에 옮겼다. 출근하면서 오리가 천을 따라 이동하는 것도 관찰하고 왜가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이나 거대한 잉어가 떼로 헤엄치는 것도 볼 수가 있다. 가끔 그런 것들을 보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외에 움직이는 생명체를 보는 게 묘한 자극으로 올 때가 있다. 계절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담아내는 일러스트는 브러시도 좀 다르게 써야 하는데 내가 잡아놓은 그림체에 맞춰 그리려고 하면 상당히 많은 공수와 함께 관찰이 많이 필요하다. 풀의 방향도 제각기 달라야 하고 나무의 모양도 일반적으로 일자로 뻗지 않을 것이며 피어나는 꽃도 한자리에서 한 종류만 피어나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고 불규칙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그 작업이 나같이 로직적인 일만 하던 사람에겐 참 어려운 과제이다.


계절 일러스트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 중에 좀 대단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계절을 4계절로 그리는 게 아닌 절기로 표현하는 분들이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데 계절을 좀 더 세세하게 표현 잘하시는 분들이다. 도시에서의 겨울과 논밭의 겨울의 풍경은 너무 다르다. 눈오는 도시에서도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홍대 합정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르다. 이게 겨울이냐 여름이냐 또 다르고 비 오고 눈오고에도 또 다르다. 이런 미묘한 차이까지 그림에 잘 담아내는 분들이 계신데 극히 드물다. 전에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갈 일 있어서 잠깐 나왔다가 어떤 분의 개인전을 봤다. 그런 계절의 미묘한 부분을 잘 담아낸 그림들을 봤다. 필모를 보니 확실히 오래 하신 분이셨고 나이도 있으셨다. 아직 그분처럼 나눠서 그려본 적은 없지만 캘린더 의뢰가 들어오면 작업할 때 가장 어려운 게 이런 부분이다. 12개월을 4계절이 느껴지게 그리는 건 안 어렵지만 한 계절을 1분기로 나눠서 그리는 게 가장 어렵다. 나는 그래서 기껏 해봐야 한 계절을 쪼갤 때 빛의 연출로 돌려 쓰긴 하는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이런 걸 잘 그려내기 위해선 자연풍경 일러스트처럼 계절을 내가 온전히 느끼는 일이 많아야 하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느끼는 게 점점 무뎌진다. 이걸 부단히 애를 쓰면서 시간을 느리게 쓰며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요즘 느낀다.


선을 쓰는 일러스트

내 그림체엔 선이 없지만 사람을 그리기 때문에 사람이 취하는 포즈로 나오는 선도 무시 못한다. 발레리나들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몸선을 선이라고 표현하는 게 그 예시인 것 같다. 가끔 '아 이거 하면 재밌겠다' 해서 관찰하고 쭉 나열하면 그림이 생일케이크에 초처럼 일자로 서있는 걸 발견할 수가 있었다. 왜 그걸 그렸을지 이해가 되는데 이게 그림에선 전혀 그런 게 티가 안 난다. (그림은 또 다른 언어라고 떠들어놓고..) 머리로는 아는데 그림으로는 표현이 안된다는 의미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아래그림이다. 인사이드컬러라는 주제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색으로 정의하고 그것들을 패션으로 직관적이게 정리해 본 것들이다.)

그런 미흡한 부분을 발견하고 그림에 면과 면이 만나는 그 지점을 선으로 인식하고 그림을 그려보자. 해서 평소보다 만나는 지점의 선을 집중해서 그린적이 있다. 그리고 내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을까 해서 묘사나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그런 화려함은 다 빼고 선에만 집중했던 것 같은데 아직 그 이상을 뽑아본 적이 없다.

요즘엔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그런 선을 써보기도 했는데 내가 쓰는 선에선 역시 그 잔잔하게 오래 보는 맛이 없다. 내 개인적인 생각엔 요즘 그리는 방법이 좀 '자극적이다.'라고 느낀다. 아직도 선을 느끼게 하면서 선을 직접적으로 안 그리는 방법을 공부 중에 있다. 전반적으로 다 훑어보면 감정을 다루는게 서툰사람이라 표현도 어렵다. 보이는걸 재해석 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얼마만큼 담아낼수 있느냐가 내 앞으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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