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오순 Dec 22. 2022

일본의 국제문화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옛날 옛날에, 일본의 국제문화교류 전문기관의 펠로우십을 받아 국제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2개월, 4개월, 6개월, 8개월, 9개월 프로그램이 있었고 연구자 과정, 도서관 사서 과정, 외교관/국제교류 공무원 과정이 있었다. 선발이 되면 일본 간사이(関西)에 있는 특별한 시설에서 무료로 일본어를 배우며 일본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자격조건이 일본어를 몰라야 하고 일본어를 왜 배워야하는지 설득해야 한다. 지금도 이 프로그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대개 참가자들은 일본어를 못하고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센터 리셉션에 있는 분도 영어로는 단 한마디도 응답하지 않고 일본어로만 대화해야하는 시스템이었다. 난 8개월짜리 프로그램에 선발이 되어 약 140개국에서 온 친구들과 내 인생의 화양연화같은 시간을 여기서 보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몇 달 후에 난 일본대학의 석사과정을 시험봐서 입학했다. 나는 이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일본의 정말 무서운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무슨무슨 ‘스탄’으로 끝나는 이름의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여기서 다 만났고, 조지아(그루지아)가 와인이 유명하고 아름다운 문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낮에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저녁에는 탁구도 치고 배드민턴도 치면서 거기서 만난 우리들은(?) 아주 원초적인 모습으로 매일 놀았다. 첫 수업에는 그럭저럭 챙겨입고 교실에 등장했지만 나를 포함해 다들 점점 머리도 복장도 신경 안쓰는 편안한 차림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 만난 친구들 이미지는 말도 잘 못하는 코찔찔이 이미지가 강한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센터 밖에서 만난 친구들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본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아시아 지역의 대사관에 부임한 친구들도 있었고 주한대사관에 외교관으로 파견된 친구들도 많았다. 그때 일본에서 만났던 ‘좀 모자란듯한’ 모습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도서관의 사서들도 본국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일하는 분들이었고 매일 지각하고 혼나던 연구자 코스의 친구들 중에는 대학의 정교수들도 있었다.


나라 이름도 생소하고 그 숫자도 너무 많았던데다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그때 다들 원래 이름이 아니라 나라 이름에 일본어에서 ‘씨’를 의미하는 ‘상さん’ 을 붙여 부르는 게 유행이었다. 이를테면 캄보디아에서 왔으면 캄보디아상, 루마니아에서 왔으면 루마니아상, 이렇게 부르는 식이다. 친해지면 이름을 부르기도 했지만 특별한 원칙도 없었다. 일본문화로 따지면 나도 윤상이라고 부르는게 일반적인데 윤이 성인지 오순이 성인지 헷갈리다보니 그때 만난 친구들은 나를 윤상이 아닌 오순상으로 많이 부른다. 한국을 의미하는 ‘칸코쿠韓国’보다 이름으로 부르는게 발음하기 편해서였을 수도 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오늘 어떤분이 ‘나단샘’과 놀러오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잠시 나단샘이 누구지 했다. 한국에서 조나단으로 부르는 분이었다. 한국에서도 내가 일본에서 경험했던 그런 국제문화교류의 세계가 있겠다 싶었고, 그 세계도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나단샘 덕분에 그때 일본에서 만났던 인도네시아상도 생각났고, 항상 함께 다니던 바누아투상과 미크로네시아상도 생각났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 그런 국제교류 경험이 없었으면 나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가 나라 이름인 줄도 모르며 살았을 것이다.



*사진은 기관 홈페이지에 있는 것 중 두 장. 16층 내 방에서 간사이 공항쪽을 바라보면 낙조가 참 근사했다. 두번째는 건물 입구에서 본관으로 향하는 길인데 내가 거기서 제일 좋아했던 도서관 가는 길과 연결된다.


#옛날옛날에 #국제교류 #문화교류 #일본문화 #일본여행 #간사이

작가의 이전글 [강연] 파주 커피 인문학당에서 에티오피아 커피 소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