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새해 인사

by 윤오순


나는 일본에서 커피 지리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륙을 넘나들며 커피를 연구한다. 에티오피아, 세네갈, 사우디아라비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 현장에서 흙을 밟고, 시장을 걷고,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그리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논문을 쓴다.


이번에 논문을 수정하면서 참고문헌을 정리하다가, 한국어 자료를 몇 개 넣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기분이 통쾌했다. 이름을 짓는 행위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인용했다.


Kim, C.S. (1952) ‘꽃 Kkot’ [Flower]. In: Kim, C.S. (1962) Kkot. Seoul: Moonji Publishing.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의 짧은 시 한 구절이 푸코의 긴 설명보다 더 정확하게 내가 말하고 싶었던 지점을 붙잡아주었다. 이름을 얻는 순간 존재는 사소한 사물이 아니라 의미를 지닌 대상이 된다. 그 역설을 설명하는 데 한국 현대시 한 편이 이렇게 무게를 꽉 잡아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조금 들뜨게 만들었다. 학술논문의 건조한 문장 사이에서 한국어 시 한 구절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삼국사기까지 넣어보았다.


Kim, B.-s. (1145/2011) 삼국사기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Translated by R. McBride. Seoul: Academy of Korean Studies Press.


출간연도 1145년. 내 논문 참고문헌에 12세기 텍스트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짜릿했다. 대륙을 넘는 것만이 스케일은 아니다. 시간을 가로지르는 것도 스케일이다.


요즘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이잼도 불철주야 바쁘시겠지만, 나 역시 ‘K-연구자’로서 나의 자리에서 묵묵히 연구하고 있다. 커피를 연구하지만, 결국은 세계를 읽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 한국어, 한국의 사유, 한국 텍스트를 자연스럽게 끼워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말연시에 너무 바빠 올해는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친구들아, 나는 요즘 이렇게 지낸다.


*사진: 공부할 때 간식을 저렇게나 꼼꼼하게 잘 챙겨먹음. 그러니 내 걱정 한 개도 안해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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