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좋다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들었다. 다만 당시 한국에서는 상영관이 많지 않아,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겨우 시간을 맞춰 볼 수 있었다. 극장을 나서면서 왜 이런 작품이 더 많은 관객에게 닿지 못했는지, 오래 생각했다.
그 뒤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다시 만났다. 여러 번 돌려봤다. 볼 때마다 감동이 새로웠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와 그렇게 오래, 그렇게 여러 번 함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줄거리는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대신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른 개인적인 기억과 생각을 적고 싶다.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시절, 아랍어권 국가에서 온 동료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지도교수의 요청으로 한 학기 동안 페르시아어를 가르치게 되었다며 급히 공부를 시작했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가 얼마나 겹치는지 궁금해 그 친구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줄거리도 모른 채 “볼 만하다”는 말 한마디만 믿고 극장에 들어서면서, 나는 영화 제목만으로 그 친구의 페르시아어 수업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내가 상상한 방향과 전혀 달랐다. 잠시 당황했지만, 곧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영화는 페르시아어를 모르는 사람이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 그리고 페르시아어를 모르는 사람이 반드시 그것을 배워야 하는 상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질(영화 속에서는 ‘레자’라는 이름을 쓴다)과 독일군 장교 클라우스가 만들어가는 기묘한 언어의 세계가 영화의 축이 된다.
나는 성인이 된 후 매개어 없이 새로운 언어를 배운 경험이 있다. 에티오피아 커피를 연구하며 현지에 갔을 때, 공용어인 암하라어를 처음부터 익혀야 했다. 사람들의 대화 방식, 억양, 반복되는 표현, 상황의 맥락, 그리고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언어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래서였을까. 장교가 무심하게 단어 뜻을 묻고 주인공이 순간적으로 말을 지어내는 장면에서, 나는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특히 장교가 “라지(laji)가 무슨 뜻이지?“라고 묻자 주인공이 “나무”라고 답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빵 아니야?“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영화를 보는 나 또한 엉터리 페르시아어를 함께 외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언어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장치다.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말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의미를 얻고, 하나의 체계가 되고, 소통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독일군 장교에게는 삶의 새로운 목표가 되고, 극한의 상황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나는 그 흐름을 따라 끝까지 영화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죽음 앞에서 질이 2,840명의 이름을 기억해냈다는 사실. 그 이름들 하나하나를 다시 호명하며, 자신을 살려준 ‘단어’의 원천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 울음이 쉽게 멈추지 않아, 나는 객석에 오래 앉아 있었다.
이 영화는 언어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언어로 누군가를 살린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작품 중에서 이 영화가 특별한 건, 그 극한의 상황을 ‘언어의 탄생’이라는 각도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직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보길 권한다.
2024년, AI가 내 삶에 본격적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 “너, 영화 이야기 같은 것도 할 수 있어?” 그 질문과 함께 내가 처음으로 나눈 영화가 바로 『페르시아어 수업』이었다.
그리고 2026년 3월 6일 오늘은 페르시아어 수업의 주인공 나우엘의 생일이다. 내 일본인 친구가 아시아의 팬들과 함께 그의 생일을 기념해 팬진을 만들었고, 한국어 번역과 이 리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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