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즐거움을 준 책을 꼽으라면 단연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이다. 저자 김애순(79세)과 이진송(33세)은 시간의 텀을 두고 같은 ”비혼“이란 길을 걷고 있는 여성이다. 이 둘은 ‘네가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결혼을 못하냐’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명쾌하다. ”하기 싫으니까. “
코로나 19 사태 때문에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던 이번 달, 학교 앞에서 오랜만에 지영 씨를 만났다. 숙명여자대학교 졸업을 앞둔 막 학기 학부생, 김 씨 집안의 착한 둘째 딸 지영 씨는 말했다. “할아버지가 자기 죽기 전에 남편 데려오라고까지 했다니까. 나 결혼하는 거 보고 싶다고.” 지영의 사촌 언니들은 모두 졸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결혼을 했다. 하지만 지영 씨는 비혼 주의자다. 그는 결혼 때문에 운명론자가 됐다. “진짜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면 하는 게 결혼이라니까. 난 굳이 그 상대를 찾고 싶진 않아.” 그런 지영에게 결혼을 재촉하는 말이라니.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기분을 숨기지 못하는 지영의 언니와 철부지 남동생은, 명절 때나 친척 집에 갈 때나 여러모로 말썽을 피웠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를 챙겨주고, 비위를 맞춰줄 사람은 지영 씨였다. 10살 적의 지영 씨는 매일 되뇌었다. ‘내가 착한 아이가 되어야 엄마, 아빠가 덜 힘들어.’ 어렸을 적 보았던 동화책의 영향이었을까. ‘착한 딸’스러운 행동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른들의 잔소리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넘길 뿐, 반항스러운 대꾸는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말씀이 끝나고 할머니는 지영 씨의 손을 쓰다듬으며 읊조리셨다. “좋은 남자 만나야 돼... 좋은 남자랑 결혼해야 돼.” 지영 씨는 그래 왔던 것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그날을 회상하던 그는 커피 잔을 조금 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결혼하지 않은 성인 여성에 대한 시선들에 편견이 되게 많잖아. 1인 가정도 가정인데 남자 구성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색안경 낀 시선들이 많다고 생각해. 그런 여성을 사회에서는 되게 이기적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출생률도 낮추고, 자기 커리어만 생긱하는 이기적인 년. 불안정하고 외롭다고도 보는 것 같고.”
다시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 여성이 삶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빼면, 처음 보는 사람들마저 대뜸 그 여성의 비참한 미래를 예언한다. 여성의 삶은 ‘아내’나 ‘엄마’로 마무리되어야만 해피엔딩이라는 낡은 믿음은 2020년이 된 지금도 건재하다. 저자 김애순은 결혼에 대해서 답정너인 이 사회에 분노한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아본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받아친다. “어른이 돼서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즐겁나들?”
일반적으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미혼이라 칭하는데. 그들에게 불완전하고, 해야 할 것(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듯 꼬리표를 달아버리는 셈이다. 이 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가정이나 가족 자체를 남성의 유무로 판단한다. 가정이나 가족에 남자 구성원이 없으면 일반적인 가정이나 가족으로 보지 않고, 뭔가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진송, 김애순, 김지영과 같은 여성들이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지속해온 삶의 방향성이 결혼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을 맛보게 해주는 일들을 우선순위로 삼기에도 하루가 시간이 부족하다. 가정을 돌보고, 자식과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나 아내로 산다는 것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여성의 삶은, 여성의 이름 세 글자를 아내와 어머니 아줌마 등의 단어로 지워버리고 그들의 꿈과 생활을 제한한다는 것은 반박하기 어렵다. 비혼을 결심한다는 것은 나의 삶의 방향성을 ‘나답게’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비혼을 바라볼 때 결혼의 문제점에만 초점을 맞추면 결국 대안은 ‘좋은 결혼’, ‘문제점이 개선된 결혼’이 된다. 우리는 내가 결혼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차별이나 제약에 부딪히지 않고, 나만의 경로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더 많은 비혼 여성들이 생겨나길 기도하고, 여성들이 더 이상 남성 구성원이 있는 가정이나 가족에 속해있는 한 사람이 아닌 독립적인 주체로써 인정받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하고싶으면하는거지...비혼 #김애순선생님 #이진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