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조손 일기 - 2025로 건너가기

2024를 보내며

by 막뚱이



2024년 12월 31일입니다. 이제 곧 2025로 건너갑니다. 새해를 위해서 새로운 플래너와 일기장을 장만해 두었습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계속 늦춰져, 결국 수수료를 두 번 물게 되었지만, 값진 3천 원이었습니다. 차창에 서리가 낀 추운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마을 앞을 지나가는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돌아왔더니, 2024년이 겨우 이틀 남아 있었습니다. 걱정인형인 저는 언젠가부터 새해가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곤 했습니다. 한 해를 내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과 함께 무사히 보내고, 다음 해로 다 같이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


고향은 시골 마을이라 죽음을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보통 장례를 집에서 치렀습니다. 죽음은 장례를 치른 후, 장지로 떠나기 전 휘장들과 상여의 행렬, 상여소리로 각인되었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지만, 경험이 더 없었던 어린 시절, 눈에 보이고 들리는 죽음들은 마냥 무섭기만 했습니다. 죽음은 멀지만 마냥 무서운 것이었는데, 6살 무렵이었나 오며 가며 자주 인사드렸던 동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죽음이 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래의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도 언젠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괜히 계속 들여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정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미래’라는 건 기대되지만, 동시에 두려운 것이 되었습니다. 상실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으며, 어른이 된 미래를 상상할 땐 나도 모르게 자꾸만 할머니의 연세를 세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없는 미래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외면하고 싶은 가능성은 바로 가족을 잃을 가능성.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일어난 사고에 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날 아침 가족들과 집에 있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소식을 들으시곤, 계속 속상해하셨습니다. 가족을 잃은 경험이 더 많기 때문에 숫자 뒤의 삶들이 다른 무게로 와닿으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깊은 애도인 것 같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새해를 함께 맞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속상해집니다. 그리고 새해라는 걸 당연하게 맞지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올해 이루지 못한 아쉬운 것들만 떠오르는 12월이었지만, 2024를 그래도 수고했다며 잘 보내주고, 2025년을 잘 맞이하고 싶습니다. 우울한 연말이지만, 올해를 지나온 분들께 모두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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