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어 좀 한다. 아니, 했다. 입사 시험으로 토익을 봐서 당시 L그룹 엔지니어 직군으로 아마도 최고 점수로 추정되는 점수도 받아봤다. 그 이후 토플도 했고 외국에서 학위도 받았다. 노베이스가 어디까지를 일컫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노베이스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15년 정도는 업무에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근거 없는 자신감은 있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무튼 주변 사람들보단 영어를 잘했다는 또 근거 없는 이 자만심이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왠지 무엇을 배운다는 생각에 가슴이 살짝 뜨거워졌다. 맥 빠진 내 삶에 기운이 도는 이 느낌이 그냥 좋았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학원도 찾아보게 되었다. Y학원 여전히 건재했다. H학원은 내가 토플 공부할 때 삼성동에서 신생 학원으로 엄청 유명했는데, 이제는 완전 대기업이 되어 있었다. 유명한 영어앱인 줄로만 알았는데 큰 학원을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어차피 학원은 플랫폼이다. 가르치는 분과 나의 상성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건 접근성이다.
어느 한 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모의시험을 봤다. 충격. 기초반을 들으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목표가 토익이 아닌데 벌써 좌절이다. 공부를 위한 회로가 이렇게 망가졌나. 시험 보는 방법을 까먹었나. 좌절할 시간도 없었다. 두뇌에 준비운동은 시키고 테스트를 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기초반은 아닌 것 같았다. 퇴근 후 갈 수 있는 곳에 중간반으로 등록했다. 초여름, 땀은 조금씩 났지만 아직은 반팔을 입기 전, 이렇게 영어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토익만의 세계관이 있었다. 토익을 잘한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단 세계관 접수부터 했다. 토익의 세상은 언제나 문제가 발생한다. 비행기가 연착하고 사무실 집기가 없으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는 항상 고장 난다. 채용하기는 너무 어렵고 구직자가 일자리 구하기는 너무 어렵다. 날씨는 항상 안 좋고, 교통은 언제나 막힌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밝고 긍정적이며 항상 바른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 상대방을 배려하고 합리적이다. 요즘 다소 쏘시오 같은 인물로 인해 수험생들을 당혹하게도 하지만 대부분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언어는 단어다. 토익도 마찬가지다. 토익이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의미도 좋아하는 의미가 있다. 네이티브는 바로 알아차리는 단어의 뉘앙스 문제가 고득점을 가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는 늘었다. 토익 점수도 당연히 늘었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식단은 이렇게 굴러가고 있었다.
채소 먼저, 그리고 단백질 위주의 육류, 이어서 소량의 탄수화물로 마무리. 내게 맞다고 찾아낸 식사 순서이다. 보통 식사를 대할 때 첫 행위는 밥이나 빵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니면 국이나 커피 한 모금. 나에겐 좋지 않은 방법이다. 무엇을 먼저 먹든 무슨 관계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어차피 동일한 칼로리면 몸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같지 않느냐고. 적어도 내겐 달랐다. 같은 양을 먹어도 포만감이 더 했고 실제로 혈당 수치는 서서히 오른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는 혈당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그 이후 갑자기 떨어지는 혈당은 또 허기를 부른다. 국밥을 먹은 후 배고픔을 더 느끼는 이유다.
상추, 당근, 오이로 배부르게 먹는다. 그리고 닭가슴살이나 삶은 달걀로 단백질을 채운다. 마지막으로 밥 두 숟갈 또는 모닝빵 한 개 정도를 먹는다. 전체적인 칼로리는 기초대사량 정도만 먹는다. 중간에 배가 고프면 역시 삶은 달걀이나 견과류 그리고 녹차 등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저녁에 운동을 하면 오히려 배가 덜 고프다. 샐러드 식당이 많아 좋았다. 내가 원하는 식단이 근처에 많이 있으니. 탄수화물은 줄이고 단백질은 적어도 최소치를 넘으려고 노력했다. 다이어트하면서 근육을 줄이는 우를 다시는 범하고 싶지 않았다.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좋은 App. 이 많다. 먹는 족족 기록했다. 사진도 찍었다. 칼로리나 영양성분 계산도 아주 잘해준다. 내 다이어트 성공의 절반은 그 App. 덕분이다. 나만의 목표, 노력, 달성, 자기만의 만족.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음식의 양을 재기 위한 저울도 마찬가지다. App.이나 저울이 없어도 대략 다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가 먹는 것들을 쌓아갔다.
눈바디도 바뀌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삼십 년 만인가. 식스팩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