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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소 Mar 27. 2016

너는 방금 나를 잃었어

캘리 에세이 ::  할 말은 많은데 나오는 건 한숨뿐



이주에 한 번 정도 보던 장거리 연애를 할 때가 있었다.

나는 연락에 꽤 무덤덤한 편이었고 그는 꽤나 바빠서

우리는 '생존신고' 정도의 듬성듬성한 연락을 했었다.


그게 몇 달이 지나니 

우리가 정말 사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관계 자체에 의문이 생겨났었다.


그 의문에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가다 보니

그에게 서운한 것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참고 또 참고, 

흘러가는 웃음 속에 서운함도 말해보고

진지하게 이런 점이 서운하다 말하면서

그가 그 서운함을 알아주고 감싸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깊은 한숨과 함께 자신도 힘드니 이해하라 말했다.

너는 안 그랬던 것처럼 말하지 말라며 나를 다그쳤다.


그와 함께한 시간들도 많고

함께 아는 사람들도 많았기에 

난 그와의 관계를 되도록 오래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또 다른 생각이 피어났다.


아, 나는 저렇게 이해해달라는 말을 듣고

이해해줄 정도로 저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는구나.


그리고 저 사람은

나의 서운함보다 자신의 상황이 더 중요한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연인이란 이름으로

엮여있는 이 시간들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주가 지나 그를 만나는 날,

나는 마지막으로 그와 나의 관계에 의미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만을 찾고

나는 그날 장거리 연애기간 처음으로 눈물로 그를 배웅했다.


그는 그저 헤어지기 싫어 투정 부리는 눈물인 줄 알고

당황해하면서도 웃으며 나를 대충 달래고는 갔다.


하지만 닫힌 문 뒤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너에 대한 모든 기대와 희망을 잃었고

너는 방금 나를 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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