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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소 Apr 26. 2016

내 마음도 너무 흐려져버렸으니까

지니 캘리 에세이 :: 할 말은 많은데 나오는 건 한숨뿐


혼자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 지인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던 때에

그룹 내에서 장거리 비밀연애를 한 적 있었다.


그는 운동을 좋아했다.

날이 좋은 날이면 친구들과 운동하러 가기 바빴다.

우리는 늘 흐린 날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의 운동복 주머니에 항상 쪽지를 담아줬다.

언젠가 한 번쯤은 운동을 마치고 온 그가

대충 휘갈겨 쓴 답장이라도 가져오길 바라면서.


웃으면서 투정도 부려보고 진지하게 부탁도 했지만

그는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답을 준 적 없었다.


결국 답장도 포기하고 흐린 날에만 만나는 것에

익숙해진 어느 날이었다.


그룹 내의 다른 사람이 내게 호감을 표시했고,

다음 날 그에게서 처음으로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도 당황스럽게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그는 정성스러운 글씨에 스티커까지 붙여

마음을 가득 담아 답을 줬는데도,

그것이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가장 바라던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그에게 가장 원하던 것을 받았는데

정말,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당황스러우면서도

슬픈 일이었다.


이제 그는,

내가 그에게 가장 바라던 것을 

내게 주어도 나를 웃게 만들 수가 없다.


이미 그를 만나던 날의 그 하늘처럼

내 마음도 너무 흐려져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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