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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소 Apr 30. 2016

사실은 네가 정말 불행했으면 좋겠어

지니 캘리 에세이 :: 할 말은 많은데 나오는 건 한숨뿐


우리는 쌀쌀한 가을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마주 닿은 어깨가 뜨거웠다.

마주 잡은 손처럼.


혹시 지금 내 표정이 이상하진 않을까,

화장이 들떠 못나 보이진 않을까

괜한 걱정에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는 추운 겨울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떨어진 어깨 사이로 찬바람이 불었다.

마주 닿지 못한 외로운 손들이 차갑게 얼어만 갔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함께 있는 순간이 미치도록 불편했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으니

그가 선물해줬었던 작은 동전지갑이 잡혔다.


내 마음처럼 텅 비어버린 그 동전지갑을

얼어버린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당황한 듯 그 지갑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가 날 잡으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혼자 걸어갔다.



그를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얕은 감정에 기대어 그를 잡아봤자

더 이상 이전처럼 스스럼없이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혼자 걸어가는 내내

그는 다섯 번의 전화를 걸었다.

여섯 번째 전화를 마침내 받았을 때

그는 내게 물었다.


"나는 너한테 뭐였어?"


그 질문이 무척이나 우스웠다.

그와 사귀던 내내 내가 그에게 궁금해했던 걸

그는 이제야 내게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이.


마지막까지 그와 나는 

이렇게도 타이밍이 안 맞는다.


나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고

두 번 다시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잘 지내라는 빈말도 안 했다.


사실은

네가 정말 불행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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