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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는 엄마 냄새

쉰다섯 번째 월요일밤

by 오소영

지난주 내내 브런치 글을 미리 써둬야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시 월요일밤이 되어서야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벌써 쉰다섯 번째인데 아직도 글쓰기 습관이 자리잡지 못해 나 자신에 대해 좀 실망스럽다. 그렇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월요일밤에 매거진은 계속 이어나가되, 비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멤버십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그곳에는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일기처럼 편하게 써보려고 한다.


이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물건을 많이 버리고 정리에 힘쓰겠다고 쓴 적이 있는데, 아직 집 안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사는 10월 중순쯤으로 다시 날짜를 잡았고, 이제 정말 과감하게 버리면서 짐을 줄여야 한다.


일단 버려야 할 물건들은 커다란 대부분의 가구와 수납장들, 오래된 가전들, 냄비들 등이다. 추려둔 옷과 책, 신발들, 가방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할 예정이다. 3박스 이상이면 직접 와서 수거해 가시기 때문에 편하다. 저번에 한번 정리할 때 아깝다고 생각되는 옷들을 패스 했었는데 그 옷들도 모두 버릴 생각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 기억이 새겨진 물건들이지만 아깝다는 마음은 이미 버렸다. 순둥씨에 대한 기억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이동장도 최근 당근으로 팔았다. 물건을 버린다고 기억이 잊히는 건 아니더라. 시간이 지나고 내가 늙으면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일 뿐.


요즘 매일 엄마와 순둥씨가 번갈아 꿈에 나왔다. 엄마는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나와서 날 챙겨주고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순둥씨는 자주 나왔지만 내게 다가와 안기지는 않았다. 아마 내 죄책감이 아직도 너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내 기억 속의 엄마와 순둥씨의 마지막 모습은 때때로 떠올라 날 헤집어 놓는다. 난 울면서 미안하다고 마음속으로 외치지만 이제 둘에게 그 말은 전달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착하게 살고 죽어서 천국에 가면 엄마와 순둥씨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인연은 이미 끝나버렸다.


엄마의 옷을 몇 개 챙겨두었다. 나는 덩치가 너무 커져서 엄마의 옷을 입을 수 없다. 그건 친구집으로 이사 가는 내게 짐이 될 것이다. 오늘 밤에 그 옷들을 꺼내 엄마 냄새가 남아있는지 코를 파묻고 시간을 보내야겠다. 아마 버릴 수 없을 것도 같다. 엄마의 옷들은 버리면 다시 가질 수 없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있어 슬프고

그래서 다행이다.

나도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이 오늘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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