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네 번째 월요일밤
난 좋아하는 것이 많다. 애니에서는 사카모토 데이즈의 사카모토와 오사라기,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와 이노스케, 그리고 먼작귀에서는 랏코를 특히 좋아한다. 가끔 가챠샵에서 관련 가챠를 발견하면 위시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코인을 넣고 레버를 드르륵 돌린다. 원하는 게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지만 의외로 뽑고 난 후에 그 캐릭이 좋아지기도 한다.
오늘은 정말 가챠샵을 향해 먼 여정을 떠났다. 왜 먼 여정이냐면 가까운 곳에는 가챠샵이 없어서 일부러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과기대 가까운 곳에 가챠샵이 하나 있어 근처에서 내렸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큰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간 친구가 바로 앞에 보이는 교회에서 들리는 소리 같다고 하여 락 느낌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더 걸어가다 보니 소리가 과기대 안에서 들리는 걸 알게 되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해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학교의 축제인지 초대가수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걸려있었고, 어떤 밴드가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초대가수는 아닌 듯했고 학교 밴드가 아닌가 짐작해 보았는데 보컬과 밴드의 역량이 꽤 훌륭해 듣기 좋아 한참 구경하다가 나왔다.
우리가 나올 때 밴드가 부르던 노래인 ‘좋지 아니한가’를 흥얼거리며 원래의 목적지인 가챠샵에 도착했다. 둘러보니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은 드물었고 산리오 상품이 많았다. 아쉬운 마음에 처음 보는 캐릭터를 뽑아보았는데, 어여쁜 하얀 고양이 아가씨가 나와서 기뻤다.
만족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려던 길, 또 다른 소품샵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헤어 악세서리가 용도별, 디자인별로 많이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최근에 갖고 싶었던 머리띠가 가격이 괜찮아서 하나 고르고, 좋아하는 동생 부부와 닮은 캐릭터 배지가 있어서 2개 담은 후, 마지막에 먼작귀 코너를 발견했다. 못 보던 랜덤 키링과 아크릴 집게가 있어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크릴 집게 견본으로 랏코가 전시되어 있어 용기를 내어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저.. 혹시 여기 전시되어 있는 랏코를 구입할 수 있을까요? 제가 랏코를 너무 좋아해서요..”
그러자 사장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요! 하지만 가챠는 뽑는 재미니까, 일단 새 봉지를 계산하고 뜯어보시면 랏코로 바꿔드릴게요. “
너무 감동해서 친구와 눈빛을 교환한 뒤 서둘러 계산하고 봉지를 뜯었다. 그런데 내가 뽑은 건… 치킨파티 고블린이었다 ㅎㅎ 순간 사장님이 후회하지 않으실까 걱정하며 사장님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사장님은 너무 행복하게 웃고 계셨다. 정말 너무 좋은 분이었다. 참고로 이 소품샵의 이름은 티는샵이다. [카카오맵] 티는샵 https://kko.kakao.com/n3_rSyVklJ)
돌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매우 뛰어나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예상 밖의 귀여운 면모로 반전매력을 보여준다. 아마 나는 그들에게서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매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움직이는 걸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 일요일에는 예전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친했던 하나음악의 오빠들과 그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것도 먹고 닌텐도 협동 게임도 하고 무척 재밌었다. 대화 중에 좋아하는 영상 얘기가 나와서 사카모토 데이즈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열 살 조카가 다가와 내 폰을 보더니 바로 말했다.
”오타쿠!“
순간 모두 웃음이 터졌다.
흔히 ‘오타쿠’는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지만, 사랑하는 것이 많고, 그것을 가지게 되면 뛸 듯이 기쁘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거리낌 없는 오타쿠들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더 나이를 먹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