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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공감

쉰세 번째 월요일밤

by 오소영

지난 주말에는 영화 파과를 보았다. 액션 장면은 멋졌지만 교차편집이 다소 산만했고, 소설에 비해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함께 보던 친구는 “도대체 투우와 조각은 왜 저런 생각을 하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설명은 거의 마지막에 몰려나와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나는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기에, 상상했던 장면을 영상과 맞춰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컸다. 투우가 조각에게 기대했던 것, 조각이 투우에게 짐작했던 것이 조금씩 어긋나며 두 사람이 불완전한 소통 끝에 결말로 향하는 과정은 소설로 읽을 때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책을 덮고도 ‘그들이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오랫동안 인물들에게 몰입했었다. 반면 영화에서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교차편집 때문에 흐름이 끊어지는 듯했고, 특히 엔딩은 마음에 남지 않았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고, 재미있게 본 분들도 많다는 것을 잘 안다.


돌아보면 모든 미디어는 관객의 공감을 얻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사용한다. 노골적인 장치보다 은근히 숨겨둔 장치가 더 매력적일 때가 많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궁금증이 끝없이 생기듯, 이야기 속 숨겨진 요소를 발견하기 전의 호기심이 몰입을 불러온다. 나 역시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처럼 상상조차 못 한 배경 속에서, 그러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담아내는 이야기 말이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책 한 권을 읽어내지 못하는 시기를 보냈다. 짧은 글부터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에세이를 완독 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싫어했던 시집도 다시 펼치게 되었다. 지금은 소설의 줄거리를 기억하며 읽을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세상에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나고, 이제 그것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 잠깐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이후 음악을 꿈꾸며 잊혀졌지만, 그때 특이한 꿈을 짧은 이야기로 써 보거나 친구와 서툴게 만든 이야기를 주고받던 기억은 여전히 즐겁게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노래를 만드는 일 역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다. 그 세계가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등단한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곳 브런치에 짧은 소설을 올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왜 돈이 되지 않는 일일수록 이렇게 재미있을까. 매일 조금이라도 글을 쓰는 시간을 루틴에 넣어야겠다. 필사 시간을 글쓰기로 바꾸고, 만년필로 노트에 적어 내려가는 것도 좋겠다. 여기 올린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발표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앞으로는 건강을 잘 돌보며, 꾸준히 창작하는 시간을 이어가고 싶다. 결국 창작은 내게 가장 즐겁고, 동시에 나의 쓸모를 확인하게 해주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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