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두 번째 월요일밤
루틴이란 무엇인가. 난 항상 루틴과 습관의 개념이 뭐가 다른지 헷갈렸다.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다고 한다.
- 루틴은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의 반복
-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행동 패턴
루틴을 잘 짜서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일들을 효율적으로 잘해보자 마음먹은 게 아주 오래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제대로 규칙을 만들어하지 않으니 하기에 쉬운 일들만 습관이 될 뿐이었다.
앱스토어를 둘러보다가 루티너리(https://www.routinery.app/ko)라는 앱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발견이다. 예전에 한번 깔았다가 실행하는 것이 힘들어 지웠었고, 다시 해보면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다. 앱을 깔고 보니 무료 버전은 루틴을 2개만 설정할 수 있었다. 아침루틴과 취침루틴을 설정했다. 꼭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던 일들을 부담가지 않게 짧은 시간 동안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오늘 아침루틴은 건너뛴 것들이 많은데, 늦잠을 자 병원에 가는 시간이 빠듯해 느긋하게 할 수가 없었다. 돌발상황이 있을 때 건너뛰거나 시간 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이 앱의 장점이다. 정해놓은 시간을 넘기면 몇 분이 지났다고 음성 알람을 설정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좋아하는 일을 길게 하다가, 귀찮지만 꼭 하면 좋은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막아준다.
어제는 느긋한 마음으로 일기 쓰기와 필사에 시간을 좀 더 투자했다. 평일에는 피곤해서 일기 쓰기를 건너뛸 때도 많으니 일요일에는 밀린 일기도 쓰고 한주 회고도 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다. 필사는 꽤 오래 쉬다가 최근 들어 다시 하기 시작했는데, 어제는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인 도대체 작가님의 '어쩌면 의외로 괜찮을지도'의 한 챕터글을 통필사했다. 좋아하는 글귀는 옮겨 적으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으니 앞으로는 독서노트도 필사도 더 열심히 해볼 계획이다.
두 가지 루틴을 8월 19일부터 반복하니 외출 후 샤워 바로 하기와 식사 후 바로 설거지하기가 얼추 습관화되었다. 매일 쌓여있는 설거지를 바라보며 너무 지쳐 씻지 못한 채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곤 했던 내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들이 우울증을 오래 앓은 내게는 매우 힘들었고, 그 일들을 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게 되곤 했었는데, 이제 집도 나도 깨끗해지고 마음도 편해졌다.
지금은 유료 구독을 1년 치 결제하고 아침루틴, 취침루틴 외에 작업루틴과 일찍 집에 들어갈 경우를 위한 외출 후 루틴, 자기 전 마음돌보기 루틴을 만들어두고 실행하고 있다. 앱 하나가 뭐라고 내 삶이 잘 돌아갈 수 있게 이렇게 큰 힘이 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뭔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체력, 정신력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되고 내가 세운 계획과 사용하는 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언제까지 루티너리를 사용할지는 모르겠다. 계속 쓰면서도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루틴은 연습루틴, 운동루틴이다. 조만간 해야 하는 외부작업에서 플룻 연주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고, 플룻을 평소에 불지 않아서 까먹고 - 연습해서 다시 익히고를 반복하는 게으른 연주자는 또 힘들게 연습을 해야 하게 되었다.
꼭 해내야 하는 어떤 일도, 하면서 지루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뤄내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시작보다는 끝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나이, 지금까지 운이 좋아 살아있지만 앞으로도 가능성으로 내 세상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