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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싹 Aug 06. 2015

별 볼일 없는 그림

이라고 하면 겸손인 줄 알겠지? 하지만 진실이라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나의 목표 전공은 '서양화과'였다.

학창시절,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를 통해 그녀의 어릴 때 이야기를 즐거워하며 본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은 그 책의 삽화였다.

이와사키 치히로의 따뜻한 그림.


무언가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그게 참 쉬워 보인다. 

슥슥 삭삭 하면 그림이 완성되고 조각이 완성되고 예쁜 글씨체 완성되며, 음악이 있으면 멋진 춤사위와 고운 노래를 들려주는  분야의 고수들은 누구나 그것을   있을 것처럼 느끼게 한. 


그런 분들의 분야가, 마침 나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면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 짧은 사람이 된다.


그들의 뼈를 깎는 노력, 임하는 마음 같은 걸 생각하기 전에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을 학창시절에 볼 때 두 가지를 느꼈었다, 

참 포근하다는 것

그리고 나도 '수채화'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 


원래 그림을 즐겨 그리고,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어도, 주변에서 "너 화가 해라."라고 할 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아 물론 화가하라는 제안들은 정말 그림을 놀랍도록 소름 끼치게 잘 그려서가 아니라, 

뭔가 잘 흉내 내서 그리는 편인 아이들에게, 으레 껏 어른들이 하는 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런데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은, 그녀가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듯이 나에게도 따스한 기운을 주고 있었다. '너도 물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고수의 수채화, 그것은 나의 진로 결정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뭐 결과적으로 나는 전공을 서양화로 선택하지도 않았고,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동네 입시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꿈을 꿨었다.


내가 그랬듯이 어떤 계기를, 또는 어떤 위로를 던질 수 있는 동화책 삽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출처 : http://www.chihiro.jp/global/ko/ 인간과 작품-이와사키 치히로


돌고 돌아 아이들과 수업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대학교 전공을 취업의 문으로 생각하는 것에도 반대고, 어떤 일을 할 때 뼈를 묻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고 살 권리 정도는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어떤 일을 하든(나만의 기준이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책임감이나, 추구하는 철학, 목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나름 세우고 웹툰을 해보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작업하던 웹툰은 네이버 베스트 도전까지도 갔었고, 하다보니 100화까지 연재했었다.

그리고  계정으로 도전만화에서 나홀로 연재를 했다. 아주 조금.


그러다 여러 이유로 긴 휴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책임감이 부족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를 꾸릴 능력은 있되, 일관적인 그림체가 없고, 어느새 손이 뻣뻣-하게 굳어서 내 만화를 봐주는 사람들 상대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었고, 그걸 너그럽게 봐주는 분들도 계셨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웹툰을 하던 시기에도 친구가 그림을 그리고 나는 스토리를 맡았었기 때문에 그림이라 하면 콘티 짤 때의 졸라맨 같은 날림 그림들 뿐이었다.)


1위를 달리는 만화는 아니어도 좋은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펼치고 싶다는 꿈은 여전히 있기에, (개인적으로 네이버 웹툰의 쥬드 프라이데이 님의 작품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사실 숨어있는 보석이 참 많다.) 창피한 현재의 그림을 노출하며, 기왕이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보고자 이 매거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물에 가깝게 그리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다만, 나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싶다.


의무적으로 좋은 말을 해주실 필요는 없다. 절대로.

다만, 무분별한 악플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

랜선 너머에 사람이 있으니까.



처음에 뭘 그리면 좋을까 고민했다.

가계부 정리만 하고 고민 마저 해야지 하다가, 몇 년 째 고장도 나지 않고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계산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많이 쓸 일이 없어서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인가_싶기도 하고, 그래서 심심하던 차에 붓펜으로 슥슥 그려봤다. 역시, 어마 무시하게 손이 굳어있군.



 


뭐라고 해야 하나, 얼마만에 느끼는 쑥스러움인지.

그래도 뭐, 시작한 김에.. 마음에 안 든다고 북북 찢어대지 말고 꾸준히 해보려 한다.



뻣뻣, 딱딱하게 굳은 손으로 그린 모처럼의 손 그림으로 매거진을 열었다.


실제 모델과 한컷, 새로운 드로잉북 표지에 이 날 그림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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