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맞벌이 부부의 주방이야기
맞벌이 부부생활 25년 차, 우리 부부는 그간 많은 일들을 함께 겪어왔다. 그중에서도 나는 남편이 내 옆에서 묵묵히 도와주었던 순간들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특히 10여 년 전, 내가 허리 디스크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졌을 때 남편은 말없이 주방 일을 도맡아주었다. 주말에는 설거지부터 요리까지, 그는 늘 손을 걷어붙이고 나를 대신해 집안을 지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남편은 내 곁에서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10년 전, 허리 디스크가 터지면서 나는 단순한 일상조차 힘들어졌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고역이었고, 집안일은 손 하나 댈 수 없었다. 그때 남편은 주저 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았던 그가 어느새 설거지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그의 진심 어린 도움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남편은 설거지뿐만 아니라 요리까지 서툴게나마 하나씩 배워가며 나를 도왔다.
얼마 전 나는 남편이 설거지를 할 때마다 맨손으로 물을 만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고가의 식기세척기를 사주려 했지만, 가격도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 관리가 불편할 것 같아 포기했다. 하지만 남편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여전히 주방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늘 미안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남편의 손이 점점 거칠어지면서도, 그 손길은 나에게 더 큰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나의 일상이 바빠지고, 주말에도 시간을 내기 어려운 날들이 많아지면서, 남편은 자연스레 주말마다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가장 즐겨 만드는 요리 중 하나가 바로 꽁치 김치찌개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지만, 그 안에는 남편의 정성과 배려가 담겨 있었다. 아들도 가끔씩 아빠의 꽁치 김치찌개를 요청할 만큼 꽁치 김치찌개는 어쩌면 남편의 요리 중 가장 자신 있는 메뉴일지도 모른다.
어느 일요일 저녁, 주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니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남편은 자신이 끓인 콩나물국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일하는 아내의 빈자리를 아무런 불평 없이 남편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다시금 느꼈다. 주말에 내가 없을 때면 남편은 혼자 밥을 차려먹고, 간단한 국 하나를 끓여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편이 끓인 콩나물국을 한 입 먹었을 때,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다. 콩나물국이라면 보통 소금이나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기 마련인데, 이 국은 어딘가 조금 다른 맛이었다. 소금 대신 국간장을 썼는지, 국물에서 약간의 시큼한 맛이 났다. 나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남편이 정성스럽게 끓였을 그 순간들을 떠올리자 그 시큼한 맛마저도 이상하게 맛있게 느껴졌다.
어쩌면 남편이 만든 이 콩나물국의 진짜 맛은 단순한 재료가 아닌, 그의 배려와 사랑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가 부엌에서 땀을 흘리며 가족을 위해 국을 끓였을 때, 그 과정 속에 담긴 마음이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 비록 간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국을 먹을 때마다 나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을 함께 삼키는 기분이었다.
콩나물국은 언제나 간단한 음식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그 자체가 남편에게는 소중한 일이었던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는 나를 위해 주방을 지키고, 요리를 배우며 조금씩 자신만의 방법으로 나를 도왔다.
내가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남편의 손길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새삼 느껴진다. 남편은 결코 주방 일을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일들을 통해 나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했다. 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동시에 더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주방에서 남편이 해내는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순간순간을 더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주말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식사를 함께 준비하는 그의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큰 사랑으로 느껴진다.
비록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일상 속에서도 남편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콩나물국을 맛있게 먹고는 설거지 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배려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남편이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주말마다 요리를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작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가 내게 해준 일들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항상 기억하고 싶다.
결국 남편의 콩나물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 맛에는 우리의 지난 25년간의 결혼 생활이 녹아 있고, 그의 따뜻한 배려가 가득 담겨 있다. 남편이 주방에서 묵묵히 설거지를 하고, 요리를 할 때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는지 느낀다. 비록 콩나물국의 맛이 가끔은 기대와 다를지라도, 그 안에 담긴 남편의 사랑은 변함없이 진하다.
우리 가족은 그 사랑을 먹으며, 남편에게 더 큰 감사와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이 작은 일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가까이 다가간다. 콩나물국 한 그릇이 주는 따뜻함 속에서 우리 부부의 중년의 시간은 더욱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