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향해 나아갈수록 삶의 무게는 묵직하게 휘감겨 온다. 누군가는 어지러운 혼돈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청명한 햇살 아래에서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내일은 늘 오늘보다 얽혀있으며 이는 마치 모두가 겪는 필연처럼 다가온다.
한 해는 열두 달, 때로는 사계절이라고들 말하지만 어느 해부터는 그리 와 닿지 않았다. 한 달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계절이 변덕을 부릴 때마다 그 경계는 흐려졌다. 어느덧 꼭 해내겠노라 다짐하고 마음먹은 첫날과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회한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마지막 날이 한 해를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었다.
첫날 부여받은 삼백 예순다섯 장의 삶을, 과연 잘 쓰고 있는 것일까.
거리는 온통 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 일기를 쓰는 사람, 기억을 쓰는 사람, 돈을 쓰는 사람, 모자를 쓰는 사람, 모두들 저마다의 무언가를 쓰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모두가 가랑비를 맞으며 우산을 쓰고 있다. 이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쓰는 일인가 싶다.
누군가는 사랑을 키우는 일에, 누군가는 건강을 챙기는 일에, 또 다른 누군가는 길이 남을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그리 두텁지 않은, 삶이라는 이름의 책자를 마치 쿠폰북처럼 한 장 한 장 써 간다.
요즘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는 의미다. 이 말에 자극을 받은 많은 이들이 평소라면 욕심낼 수 없었던 소비 혹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여행 등을 과감하게 '지르면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변해버린 삶을 보다 다채롭고 풍요롭게 가꾸고자 한다. 어쩌면 틀에 갇힌 듯한 사고와 제한된 삶의 범위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서의 일탈을 꿈꾸고 만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일탈로 말미암은 순간적인 만족감과 해방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갖고 싶었던 물건을 손에 넣거나 감히 행하지 못했던 소비를 즐기며 잠시 기뻐하지만 그러한 순간들은 어김없이 다음 달 카드 고지서에, 자동 이체되는 통장 내역에 고스란히 그 무게가 지워져 돌아오는 법이다. 그 순간 누군가는 깨닫는다. 모두에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혹은 이렇게 즐기며 살아도 되겠다고.
'단 한 번뿐인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수많은 정의와 이를 정의 내리기 위한 철학들이 존재하겠지만 [삶에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는 자기만의 방법]이라고 감히 정의를 내려본다.
1년은 365일,
10년은 3650일,
30년은 10,950일,
50년은 18,250일,
80년은 29,200일이다.
누군가는 고작 300장, 1800장도 안 되는 시간을 부여받고 세상에 왔다가 안타깝게 먼저 떠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4만 장에 가까운 긴 시간을 부여받는다. 누군가는 1만 장도 안 되는 짧은 생애 동안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3만 장을 쓰고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삶이 더 나은 것이고 더 옳은 것이라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다를 뿐이다.
기대 수명을 80세로 가정했을 때 우리가 삶에서 부여받는 [하루]라는 티켓은 약 3만 장이다. 만일 지금 나이가 스물이라면 일생에 남아있는 하루는 약 23,000장. 만일 서른이라면 약 2만 장, 마흔이라면 1만 5천 장을 쥐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숫자로 환산해보면 이다지도 작은 숫자이고 덧없는 카운트다운이 되어버리고 만다. 마치 이젠 시간이 얼마 남은 것 같지 않고, 또 이제껏 무엇을 하며 귀중한 티켓을 허비해버린 것인가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YOLO 다. 마케팅 회사들에서 부르짖는 충동적인 소비나 일탈에 대한 합리화가 아닌, 바로 '오늘 하루가 바로 단 한 차례뿐인 인생을 만들기 위한 귀중한 카드'라는 인식으로서의 YOLO 정신이.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이니 지금을 즐기세요(나중 일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혹은,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 단 하루도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일이 없기를."
오늘도 주어진 하루를,
그렇게 또 삶을 썼다.
cover. Vincent Desiderio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