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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Dec 30. 2019

아빤 네게 거짓말을 했어

나방이 나비가 되는 마법


 늘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근처 개천에서 하루 종일 잠자리를 잡거나 민물가재를 찾아다녔고, 한 곳에 몰린 올챙이 무리를 흩뜨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산자락에 가까운 집으로 이사를 한 뒤부터는 주로 곤충을 관찰하거나 채집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옛날식 주택이었던 우리 집에는 쥐며느리, 쌀벌레, 설설이(다족류)나 거미, 지네 등이 심심찮게 출몰했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집안이나 지하실 어딘가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가족들 중 누구도 굳이 그 소리의 근원을 추적해 해충을 박멸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날이 추워서 안에 들어왔나 보다, 하고 말 따름이었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하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행운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연과의 교감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은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큰딸 햇살이는 동물, 공룡은 물론 곤충에까지 관심이 많다. 특히 동물을 향한 햇살이의 애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친다. 반면 곤충에 대한 관심은 조금 성질이 다르다. 애정보다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반씩 섞은 느낌에 가깝다.


 도시에 사는 요즘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단단한 재료로 지어진 도심 속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햇살이에겐 곤충다운 곤충을 접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다. 인근 공원을 뒤져 만날 수 있는 곤충이라곤 개미나 봄날의 꿀벌과 나비, 여름의 매미, 가을철의 잠자리 정도가 전부였다. 얼마 전 교외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만난 메뚜기와 방아깨비를 한참 동안 쫓아다니며 즐거워하는 햇살이의 천진한 뒷모습이 사랑스러운 동시에 안타까웠다. 그깟 곤충들 좀 못 접하는 것 뿐인데, 어쩐지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햇살이의 세 번째 생일 무렵이었다. 축하 파티를 열고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햇살이 엄마는 예쁜 생화를 사다가 거실을 꾸몄다. 중앙을 장식하는 흰 꽃의 이름은 리샨셔스라고 했다. 신나게 유치원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온 햇살이는 행복한 텐션을 유지한 채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귀여운 드레스를 입고 동생 별님이와 함께 엄마가 꾸민 꽃밭 사이에서 생일 기념 촬영까지 무사히 마쳤다. 밖에는 스산한 가을비가 으슬으슬 내리고 있었지만 햇살이의 생일은 따뜻했다.


 햇살이의 생일이라 선물을 사들고 일찍 퇴근한 터여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엄마는 젖병을 들고 별님이와 씨름을, 햇살이는 새로운 장난감 선물을 이리저리 만지느라 무아지경이었다. 그런 거실에서 햇살이의 목소리와 함께 오래지 않아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아빠야!!!!!!"


내게 소리를 친 건 별님이에게 젖병을 물리던 엄마였다.


햇살이가 애벌레를 발견했단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햇살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리샨서스는 애벌레가 많이 꼬이기로 이름 높은 품종이었다. 아내는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햇살이의 생일을 예쁘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불안감을 안은 채 리샨서스를 준비한 것이었다.






 아내 역시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곤충이나 벌레에 대해 나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벌레란 아내에게 있어 극도의 혐오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신혼 시절 사무실에서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위에서와 같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주방 서랍에서 노린재가 나왔어!!"


아내가 얼마나 벌레를 무서워하는지 익히 알던 나는 황급히 집으로 향했고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에는 노린재 대신 노란빛으로 반짝거리는 육각 너트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거실로 나가자 테이블 위에는 작고 느릿한 점박이 애벌레가, 그 옆에는 이미 햇살이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녀석의 눈빛은 '아빠, 이게 뭐야?'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햇살이에게 답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점박이 애벌레를 검색해 가장 비슷한 생물체를 찾아냈다. 점박이 나방의 유충이었다. 호기심에 가득 찬 햇살이 곁에는 불안 가득한 시선을 던지는 아내가 서 있었다. 대체 그 벌레의 정체가 무어냐고.


"응, 나비 애벌레야."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벌레를 집안에서 발견한다 해도 바퀴벌레나 모기 등의 어지간한 해충이 아닌 이상 죽이는 경우는 없었다. 처음 이사하고서 발견한 무당벌레도, 화장실에서 가끔 발견하는 실거미들도, 실수로 창문 안쪽 방충망에 붙은 채 갇혀버린 매미도 모두 화장지에 곱게 싸서 바깥세상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나방은 대부분의 종이 해충으로 분류되지만 우리 집 거실에서 발견된 녀석은 운이 정말 좋았다. 햇살이가 처음 발견했으므로.


 햇살이는 세 번째 생일이었음에도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 또래들보다 말은 늦은 편이었지만 모든 이야기를 잘 알아듣고 나름대로 의사 표현은 다 하고 있어서, 주위의 염려에도 우리는 다 자기 때가 있는 거라 믿으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자기가 발견한 애벌레가 아가 나비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햇살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햇살이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는 애벌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비가 될 저 녀석을 어떻게 할 건지 내게 눈빛과 제스처로 열심히 묻기 시작했다. 칙칙한 회색 몸뚱이에 털이 삐죽삐죽 올라와 있는 못생긴 애벌레가 나비 유충이라는 말에 아내는 다소 미심쩍은 눈치였지만 그래도 더는 보기 싫은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햇살아, 이 애벌레는 밖으로 돌려보내면 나비가 될 거야."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상황상 난관이 많았다. 리샨서스에 붙어있던 애벌레인지라 방충망에 붙은 날벌레들처럼 밖으로 던져서 날려 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자니 차가운 가을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벌레 공포증에 아직 갓난아기인 별님이를 돌보고 있는 엄마가 어찌할 수도, 그렇다고 햇살이를 돌봐야 하는 내가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애벌레를 화장지에 곱게 올려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햇살이가 아빠를 톡톡 치더니 현관문 밖을 가리켰다. 밖에 나가서 놔주고 오라는 의미였다. 


"엄마가 지금 바쁘셔서 햇살이 혼자 두고 아빠가 나갔다 올 수가 없어 지금은."


그러자 햇살이는 밖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쫙 펴고 손바닥으로 자기 가슴을 팡팡 쳤다. 자기도 같이 나가겠단다. 날도 춥고 비도 내리고 있었다. 햇살이를 데리고 늦은 저녁 비 오는 밖에 나가 애벌레를 방생할 수 있는 공원의 화단까지 다녀오는 건 별일 아닌 듯해도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도중이었던 우리에게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냥 모른 척 창밖으로 던져버리거나 변기 물에 넣고 내려버리면 될 일이었다. 눈동자가 반짝이는 햇살이의 시선을 아이패드나 다른 무언가로 돌리고 처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햇살이랑 같이 나갔다 와."


별님이를 안고 있던 엄마였다. 


"햇살아, 지금 밖에 비 오고 추우니까 엄마가 입혀주는 우비랑 모자 꼭 쓰고 나가서 나비 아가 보내주고 와. 알았지?"


"응!" 

당시 햇살이가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우리 부녀는 둘 다 두툼한 옷과 우비를 단디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섰다. 햇살이는 빨간 장화까지 신었다. 내 한쪽 손에는 햇살이의 자그마한 손이, 다른 한쪽에는 화장지와 그 위에서 꿈틀대는 나방 애벌레가 올려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제발 아무도 타지 말아 주세요를 속으로 외쳤다.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할 법한 이 상황을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이해받을 자신도 없었던 까닭이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멈춤 없이 1층에 도착했고, 햇살이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릴 때까지 동그란 눈으로 아빠 손 위의 애벌레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후두둑 우비를 때리는 세찬 가을비를 맞으며 건물 지붕이 지켜주지 않는 화단까지 잰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적당히 널찍한 나뭇잎을 찾아 화장지 위의 애벌레를 밀어 내려주었다. 애벌레는 빗방울을 피해 급히 흙 쪽으로 기어내려 갔다. 


"햇살아, 이제 저 애벌레는 겨울이 가고 날씨가 따뜻해질 즈음 나비가 될 거야."


"응!"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젖은 몸을 털고, 녹인 다음 신나는 생일 파티를 즐겼다. 





 햇살이의 말문은 약 37개월, 즉 생일 하고도 한달이 지난 즈음부터 폭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겨울 방학 여행지에서는 음식점에서 자기가 메뉴를 주문하고선 자기 배가 뚱뚱하다느니 배가 부르다는 이야기도 곧잘 표현하기 시작했다. 해를 넘겨서부터는 말에 거침이 없었다. 일 년 전만 해도 말을 하지 못하던 아이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햇살이의 언어구사력은 폭발적이었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햇살이가 따로 무슨 사교육을 받았나 물을 정도였으니 모든 걱정은 그저 기우였던 셈이다. 드디어 햇살이의 기억들이 언어화되어 뇌리에 기록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나는 우리가 대단한 착각을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듬해 봄부터 우리 가족은 강아지까지 다섯이서 소풍을 다니기 시작했다. 햇살이는 말을 능숙하게 하기 시작했고, 갓난아기였던 별님이도 제법 몸을 가눌 줄 알게 되어 다 같이 야외에서 따뜻한 봄날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공원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고 꿀벌은 물론 하얀 나비 노란 나비들이 사방에 날아다녔다. 햇살이는 나비를 쫓아 공원을 종횡무진했고, 별님이는 텐트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질주하는 언니를 지켜봤으며, 강아지는 이미 신나게 뛰어놀고 지쳐 엄마 곁에 잠들곤 했다. 미세 먼지 수치가 높지 않고 날이 좋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바빠도 이 주에 한 번은 야외에서 온 가족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소풍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유모차에 누워있던 햇살이가 별안간 내게 물었다.


"아빠, 그 애벌레 기억나?"


 솔직히 말해서 기억이 안 났다. 소풍나와서 무슨 애벌레를 봤었나 싶어서 아내에게도 물었지만 모른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 애벌레 있잖아. 햇살이 생일날 아빠랑 같이 나뭇잎에 놔준 거!"


응? 아아. 

반년 전에 빗줄기를 뚫고 풀어주고 온 그 나방 애벌레!


"아! 그 나방 애벌레 말이야? 기억나지! 햇살이도 그걸 기억해?"


햇살이가 말을 못 하던 시절이어서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아빠 나방이 아니라 나비라고오! 그 애벌레 나비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사실 햇살이에게 나비 유충이라고 거짓말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햇살이는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나비가 될 애벌레를 나뭇잎 위에 놓아주고 왔다는 걸 똑똑히 기억하고,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가 난처해하고 귀찮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던 그 순간이 햇살이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또한 그날 우리 가족의 대처를 애벌레, 나아가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으로 삼은 것 같았다. 그날 한창 바쁜 와중에도 우비와 장화, 겨울옷을 챙겨 입혀준 아내에게 감사했다. 비를 맞으며 나방 애벌레를 놓고 오는 일에 의문을 품었음에도 결국 꾸역꾸역 다녀온 나 스스로에게도 대견하다고 칭찬해주었다. 





 이후 훌쩍 커버린 햇살이는 아직도 내게 묻는다.


"아빠 그때 나비 애벌레 데려다 준거 기억나지? 하얀 나비가 됐으면 좋겠다"



언젠가 세월이 더 지나고 햇살이한테 이야기해줄 셈이다. 

사실 햇살이 세 살 생일에 나타났던 애벌레는 나비가 아니라 나방이었다고. 

나방 아가라고 말하면 나가서 풀어주고 온다는 허락을 엄마가 안 해주실 것 같아서 아빠가 거짓말했던 거라고. 


이건 햇살이랑 아빠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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